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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봄날 그가 급작스레 내 곁을 떠나간 뒤로 한동안 인생 자체가 멎어버린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지금도 완전하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나는 삶의 곳곳에서 그의 빈자리를 실감하고 그때마다 가슴이 먹먹해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환상통에 가까운 가슴 아픔까지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느낌은 아마도 내가 아주 오랫동안 지니고 살아야 할 어떤 것일 터이기에.
그러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다는 건 내 착각 혹은 환각일 뿐이다. 이 순간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내 인생도 흘러가고 있다. 그가 떠나갔다고 해서 내 인생에 산적해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아이고 너 참 힘들고 가슴 아프겠구나 하고 친절하게 알아서 해결돼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작년 꼬박 1년을 그런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았고 그 일이 어찌어찌 해결된 지금 역시도 이런저런 소소한 문제들이 내 신경을 괴롭히고 있다.
선뜻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가끔 부모님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제 내 나이도 최소한 중고등학교 정도 다니는, 좀 더 빡빡하게 잡으면 대학교 정도 다니는 자녀를 둘만한 나이가 되었다. 내가 그 나이쯤이었을 때 부모님은 어떠셨더라 하는 것들을 요즘 부쩍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문제들을 아마 그때의 부모님도 다 겪으셨을 텐데, 그때 두 분은 아무런 내색도 생색도 없으셨다. 그냥 살다 보면 그런 일쯤 으레 일어나게 마련이라는 듯, 두 분은 참 물 흐르듯 무리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최선의 방법으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셨던 것 같다.
어릴 땐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으면 그런 스킬쯤은 알아서 따라오는 것인 줄만 알았다. 내가 굳이 뭔가를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으면 편의점에 가서 담배나 술을 사도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지 않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건 그냥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돼 보니 어름 반푼도 없는 소리다. 어른에게도 세상 사는 건 똑같이 어렵고, 이럴 때 뭘 어떡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순간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이제 몇 년 후면 내 나이도 앞자리가 바뀐다. 천명(天命)을 알아야 한다는 나이가 다가오고 있는 셈인데, 지금 이렇게 천방지축 상하좌우도 분간 못하고 살고 있는 내가 고작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른다고 천명을 알 정도로 현명해질까. 별로 그럴 것 같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늘 그런 식인지도 모른다. 20대 때는 20대 만의 알 수 없는 인생이 있고 40대 때는 40대 만의 알 수 없는 인생이 있으며, 그런 식으로 60이 되어도 70이 되어도 인생은 언제나 어디까지나 알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며칠 있다 설이 지나면 또 꼼짝없이 나이 한 살 더 먹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니 그래도 이젠 만 나이를 치니까 1년은 벌었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래도 저래도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젠 철 좀 들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변명 비슷하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몇 살을 먹든, 인생은 여전히 알 수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