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한 번 가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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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우리 집에서 큰길을 하나 건너면 그리 크지 않은 시립 도서관이 하나 있다. 이곳은, 한동안 그와 내가 한 달에 두 번 꼴로 들러 한도를 꽉꽉 채워 책을 빌려 들고 나오던 곳이었다. 우리가 주로 빌려 읽었던 것은 한국이나 일본 소설 쪽이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나 미야베 미유키, 정유정, 한강 등의 책을 우리는 대부분 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리고 그중에 마음에 남는 몇 권은 서점에 들를 일이 있을 때 사 오기도 했었다. 그러던 몇 년간은,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해 버린 후 내 인생에서 가장 책을 열심히 읽은 시기였을 것이다.


갑자기 그 도서관 생각이 난 것은 '몬테 크리스토 백작' 때문이었다. 이 책은, 언젠가 읽는다고 읽은 것이 한 권짜리 '다이제스트'로 된 것을 읽어버려서 영 찜찜하게 마음에 남았다. 차라리 안 읽으면 안 읽지, 이런 요약본으로 된 것을 어설프게 읽어버리면 원전에 대한 흥미는 흥미대로 떨어지고 새로 읽기에는 '그래도 대충 한 번은 봤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아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전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식기 전에 빨리 읽을 필요가 있었다.


일단 서점을 검색해 봤다. 그러나 워낙에 판본도 많고, 출판사마다 길이가 제각각이라 도대체 어떤 출판사의 책을 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집 근처 도서관에 비치된 걸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았다. 도서관에 이 책이 비치돼 있지 않았다. 있는 거라고는 어린이용 열람실에 있는, '아동용'이라는 포기가 붙은 한 권짜리 축약판(아마도 내가 읽은 것과 거의 비슷할) 뿐이었다. 세상에. 나는 좀 당황해서 두 번 세 번 검색을 해봤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아니, 이 책 그래도 세계명작전집 같은 거 나오면 거기 꼭 들어가는 그런 책 아니었나. 그런데 그런 책이 도서관에 비치돼 있지 않다니.


그래도 이왕 마음이 났으니, 오늘은 도서관이나 오랜만에 가서 뭐 재미있는 책이 들어왔는지 좀 볼까. 그런 생각을 했다. 도서관에 발을 끊은 지가 대충만 생각해도 3년 가까이가 되어가니까 그 사이에 비치된 책들도 아마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내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려던 나는, 로그인이 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패스워드를 까먹었나. 귀찮음을 무릅쓰고 아이디 찾기를 해봤지만 '가입된 사용자가 없다'는 메시지만 되돌아왔다. 그러니까, 그와 내가 도서관에 발을 끊은 몇 년 사이에 내 개인정보가 파기돼 버린 모양이었다. 공지사항 중간 부분에, 2년 이상 로그인을 하시지 않으면 개인정보가 파기되니 유념해 달라는 친절한 안내가 붙어 있었다. 그걸 봐서, 아마도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그와 함께 빌려다 읽은 수백 권의 대출기록은 이제 그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에 나는 잠시 쓸쓸해지고 말았다. 이미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는 그와 함께였던 모든 순간들과, 이제부터는 어쩔 수 없이 나 혼자일 수밖에 없는 모든 순간들에. 이런 식으로, 당신은 점점 잊혀져 내 기억 속에만 살게 되는 걸까. 사람이 떠나면 가장 먼저 잊혀지는 게 목소리라고 한다. 눈을 감고 그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다행이다. 아직은 또렷하게 기억해 낼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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