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보고 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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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2월이 이젠 거의 끝나가고 있다. 올해는 그나마 덤으로 붙은 하루가 더 있긴 하지만, 그래봤자 만 24시간에 불과할 뿐이다. 작년과 올해의 경계에 서서 출발 신호가 이미 한참 전에 울렸는데도 선뜻 뛰어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게 암묵적으로나마 인정되는 건 그때까지 만이다. 3월부터는, 좋아도 싫어도 나를 둘러싼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도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불과 며칠 전에 다녀온 봉안당에 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발렌타인데이 무렵의 날씨는 영상 17도까지 올라가서, 날씨가 뭐 이러냐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어제도, 뭐 그 정도는 아니나마 그래도 날은 온화한 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봉안당으로 향해 가는 비탈길을 오르며 나는 새삼 올해 겨울도 결국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도 호된 추위가 몇 번은 남았겠지만, 그거야 올림픽 시상식 후의 플라워 세레머니 정도의 느낌일 테고 '본 겨울'은 이제 다 끝났다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봉안당에 가서 그의 얼굴을 보고 한참이나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다가 내려왔다.


어제의 봉안당 행은 다분히 즉흥적이었고, 그래서 집에서 점심까지 먹고서야 나섰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오는 버스 족족 사람이 많아 도저히 탈 엄두가 나지 않아 두 대 정도를 그냥 보냈다. 세 대째 온다는 버스가, 안내판에 의하면 사람이 좀 적은 모양이어서 그걸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분명히 저만치서 들어오는 버스를 확인하고 탔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는데.


30분쯤 후, 깜빡 졸던 나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버스를 발견화고 화들짝 놀라 벽에 붙은 노선 안내도를 확인했다. 전혀 엉뚱한 버스였다. 분명히 확인하고 탄 것 같은데.


아니 내가 분명히 번호 보고 탔는데 왜 이 버스 그 버스가 아니냐는 소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부랴부랴 하차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다행인지 모르는 동네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동네인 것도 사실이었다. 이럴 때 믿을 거라곤 역시 핸드폰뿐이다. 버스를 한 번 정도 갈아타면 집까지 가는 노선이 있긴 했다. 시간이 꽤 걸리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오래전 그와 함께 다녔던 몇몇 곳을 버스의 차창 너머로나마 둘러보며 한 시간 반이나 걸려 집에 왔다.


나이 50도 안 되어 벌써 치매가 오는 건가, 하고 스스로를 타박하기도 했다. 그냥 안 보고 탔으면 부주의했다는 정도로 끝날 일인데, 왜 내 기억 속에는 분명히 버스 번호를 본 기억이 이렇게나 생생한지 모를 일이다. 가뜩이나 버스 두 대를 보내고 세 대째 탄 버스인데 번호를 안 봤을 리가 없는데. 그러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어제 집에 있기 좀이 쑤셔서 나가는 것 같으니까 나가는 참에 바람이라도 쐬라고 당신이 일부러 다른 버스에 태운 것 아니냐고.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가 떠난 지 꼭 1주기가 되던 날 봉안당에 가려고 집을 나선 나는, 역시나 분명히 번호를 보고 탔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목적지에서 벗어난 곳에서 내렸다. 그곳은 그가 마지막으로 거쳐간 화장터 앞이었다. 아, 이거 당신이 여기 들렀다 오라고 날 이리로 보낸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을.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어제도 아마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내 핑계 아니면 외출도 잘 안 하는 너니까, 이왕 나오는 거 여기저기 구경 좀 하다가 집에 가라고. 그런 거라면, 뭐 할 말도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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