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갑작스레 내 곁을 떠나던 날의 기억은 톰과 제리에 나오는 에멘탈 치즈 조각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아마도 퍽이나 많은 일이 일어났을 그날의 일들에 대한 기억은 매우 불연속적이고 드문드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날 나는 꽤나 많은 일을 해치웠는데, 아직도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 일들을 다 해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경찰서에 가서 두 시간 남짓 진술 조서를 쓰고, 나는 그가 안치된 근처 병원의 영안실로 가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그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 분명히, 어젯밤까지도 내 옆에서 잠들었던 사람이 스테인리스로 된 커다란 냉동고 안에서 얼굴을 내미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상온에 오래 노출시키면 안 된다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랬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누군가가 나를 놀리려고 꾸민 질 나쁜 장난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일어나 버린 일이라는 현실을 깨닫는 것은 내겐 너무 요원한 일처럼 느껴졌다.
넋이 나간 걸음으로 병원을 나와, 나는 길거리에 선 채 핸드폰으로 '심리상담'을 검색했다. 지금 당장 갈 수 있는 곳 한 군데를 골라 무작정 전화를 했다. 제가 지금 상담이 필요한데 지금 상담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버스 노선을 확인할 기력조차 없어서 택시를 탔다. 그렇게 간 상담실에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사실 잘 기억하지 못한다. 몇 마디를 하다가 울고, 또 몇 마디를 하다가 울고 한 기억만이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 몇 마디 한 말들조차도 토막토막 끊어지고 부스러진, 벽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수준 이상의 말들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울면서, 같은 사람인 나조차도 지금은 차마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날 것의 심정 그대로를 쏟아붓듯이 선생님에게 토로했다.
선생님은 오늘 집에 돌아가 혼자 지낼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쉼터 같은 곳에 가서 며칠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방법이라고도.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얼추 십수 명이나 되는 낯선 사람들이 다녀간 집을 오기를 부리듯 청소했고, 어쨌든 침대에 누워 선잠이나마 잠을 조금 잤다. 지금 생각하니 그 몇 시간은 일종의 '골든 타임'이었다. 뭔가 사고를 친다면 그때여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떠나보낸 와중에도 별로 죽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 살자고, 아마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 미칠 것 같은 마음을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근 두 달째 나는 월요일 아침마다 한 주일 간 내게 일어난 일들을 보따리상처럼 싸들고 선생님을 찾아간다. 그 상담을 위해 나는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타야 하고, 약간 걸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계절이 가는 것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봐야 한다. 싸들고 간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풀어놓으면서, 첫날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상담 시간 내내 운다. 그래서 월요일은 저녁에 누울 때까지도 눈자위가 따끔거린다. 돌아오는 길에는 집에서 서너 코스 앞에서 내려 그의 책상에 꽂아놓을 꽃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도착할 때쯤엔 배가 고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다녀왔다고, 집 잘 보고 있었냐고, 이제 정말 날씨가 덥더라는 둥, 오늘 마트에는 이런이런 꽃들을 팔더라는 둥, 지나오면서 보니 무슨 가게가 없어졌고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생겼더라는 둥 하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늘어놓는다. 아마 누가 옆에서 본다면 영락없는 정신 나간 사람일 것이다.
내 월요병은 이런 식으로 온다. 관객이 없는 모노드라마로. 그리고, 회사 가기 싫고 일하기 싫고 늦잠 자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던 그 시절의 월요병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새삼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