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도 만화방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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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도 나도 부산에서 학생으로 지내고 있을 때 우리는 만화방에 자주 같이 갔었다. 가게 안을 빙빙 돌며 보고 싶은 만화책을 전질 채로 뽑아다가 무슨 벽이라도 쌓듯 옆에 놓아두고 한 권씩 읽어가는 걸로 데이트를 대신한 적도 많았다. 나는 거기서 한참 연재 중이던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를 읽었고 그는 이현세와 박봉성의 만화들을 즐겨 봤다. 작년에 20여 년 만에 극장판을 개봉한 슬램덩크 같은 경우는 아예 전질을 빌려다가 빈 강의실 하나를 점거하고 거기서 봤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지나가버린 젊은 날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는 만화 중에 '드래곤볼'이 있다.


어제 가끔 들르는 커뮤니티에서 토리야마 아키라 별세 운운하는 글을 보고도 처음에는 얼른 와닿지 않았다. 가만있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한참을 암중모색하듯 더듬다가, 아니 이 사람 드래곤볼 그린 사람이잖아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향년 68세라는, 요즘 세상치고 그리 많다고만도 할 수 없는 나이여서 더 그랬다. 심지어 사망한 것은 이미 며칠이나 전이고, 공식 발표가 장례까지 다 치르고 나서야 나온 것이라니 더욱 허망한 기분이 들었던 듯도 싶다.


그가 떠나고 나서 부쩍 부고를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도 영국의 여왕도 있고 일본의 전 총리도 있고 그 이름 자체가 축구와 동급이던 유명한 축구선수도 있고 프로그램 하나를 수십 년이나 진행하던 원로 코미디언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그도 나도 같이 좋아했던 배우 한 분도 안타까운 선택을 했고 어젠지 그젠지는 전 영부인 한 분도 세상을 떴다. 원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가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잃은 후 부쩍 누군가의 사망 소식에 민감해진 것인지 어느 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년부터 올해까지는 이상하게 예전에 그와 함께 보던 만화들이 자꾸만 역주행을 해서 올라온다는 느낌이다. 슬램덩크가 20년 만에 극장판을 개봉하더니 바람의 검심 애니메이션이 27년 만에 리부트를 했고 에반게리온 극장판이 개봉을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슬픈 소식으로나마 드래곤볼 또한 이런 식으로 오랜만에 한 번 그 이름을 떠올려보게 만든다. 작고한 토리야마 아키라는 드래곤볼이 한참 연재하던 당시에 지방세로 낸 금액이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거주하던 지자체에서 그의 집 앞으로 따로 전용 길까지 내 줄 정도였다는데 그런 사람 또한 닥쳐온 시간 앞에서는 무력했던 모양이다. 만화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조차 그럴진대 일개 평범한 장삼이사에 불과했던 그로서야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싶은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그곳에도 만화방이 있다면 이번 주말에는 그 좋아하던 드래곤볼이나 정주행하고 있기를. 나도 그래볼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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