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는 퇴근시켜 주나요?

-106

by 문득

날짜는 정말 잘도 간다. 설이니 뭐니, 그때 끓여 먹을 떡국 때문에 떡국떡을 사고 냉동만두를 샀던 것이 불과 며칠 전 같은데 좀 있으면 설이 지나간 지도 벌써 한 달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 한 20일만 지나면 올해도 벌써 4분의 1이 지나간다. 도대체 뭘 했다고. 이쯤에서는 그렇게 입을 떡 벌리지 않을 수가 없다.


겨울도 다 가고 이젠 봄이라는 계절 감각과는 사뭇 다르게 한국의 3월은 그래도 아직은 춥다. 그 핑계로 옷장 정리도 침구 교체도 다 미루고 있다. 큰맘 먹고 싸 넣었다가 다시 꺼내야 되면 그것 같이 귀찮은 일이 없다는 아주 훌륭한 핑계를 대고. 꽃샘추위라고 할만한 것은 월초에 한 번 연휴 때 된통 추웠을 때 지나가지 않았나 생각하면서도 괜히 그렇게 미적거려 본다. 귀찮은 것 반, 사려 깊은 척하는 것 반 해서.


그리고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예의 그 전기장판 말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전기장판은 3월 중순 정도엔 걷을 예정이었다. 아무리 아직 날이 춥다고는 해도 설마 영하 10도 넘게까지 떨어지는 일이 이제 와서 생기진 않을 테고, 그런 정도라면 굳이 전기장판이 없어도 아직 덮고 있는 두꺼운 이불 정도면 버틸만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에서 대충 그렇게 정해 놓았다. 그래 놓고,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나 몰라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래서 될 일이 아니다. 이번 주말이 바로 그 3월 중순에 해당하기 때문이며, 그러니 내가 정해 놓은 계획대로라면 주말엔 침구 교체는 미뤄두더라도 최소한 겨우내 신세를 졌던 전기장판은 이제 개어서 이불장 안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전기장판을 퇴근시켜 버려도 괜찮을까. 아직도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30분쯤 전에 미려 켜서 따뜻하게 데워놓은 장판 속으로 쏙 들어가 파묻히는 기분은 그야말로 천국 같다. 날이 적당히 따뜻해졌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지는 않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오늘만 해도 나는 오후쯤 알 수 없는 한기에 한참이나 떨다가 급기야 보일러 온도를 1도쯤 올렸다. 아직도 가끔 그러니까, 못 이기는 척하고 이달 말까지는 그냥 둬볼까. 슬그머니, 그런 게을러터진 생각을 한다. 그래서 아마도, 전기장판의 근무 기한은 2주쯤 연장되게 될 모양이다.


내가 딱 너 그러고 살 줄 알았다고, 어디선가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왜, 굳이 귀찮게 걷을 필요 뭐 있냐고, 그냥 컨트롤러만 빼서 넣어버리면 사시사철 내내 쓸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몇 달만 버티면 또 추워질 테고, 그러면 컨트롤러만 꺼내서 다시 꽂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아마도 그를 먼저 보내고 아주 조금이나마 철이 들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이쯤에서는 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꼬우면 당신이 와서 전기장판 걷든지. 며칠 있으면 화이트데이인데, 혼자만 좋은 곳으로 도망가서 사탕 하나 안 사주는 사람의 잔소리 따위는 기각이라고.


20210524163037798fhdo.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슈크림라떼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