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봉안당에 다녀오는 날 내 점심 메뉴는 대개 라면으로 고정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도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있고, 집순이 주제에 편도로만 한 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그 길을 다녀온다는 건 제법 기력을 소모하는 일이어서 그야말로 뭐든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주는 이리저리 식단이 어그러질 이벤트가 많이 생겨서, 아무래도 봉안당에 다녀와 라면에 말아먹을 식은 밥을 만들어놓기는 무리였다. 한참을 골질하던 끝에 나는 그냥 오는 길에 있는 한 복합쇼핑몰 식당가에 가서 오랜만에 히레가스 정식이나 사 먹기로 했다.
봉안당에 가서 새 꽃을 놓고, 나 이만저만해서 사는 게 머리 아파 죽겠으니 제발 뭐든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한참을 징징거렸다. 그러고 돌아오는 길에 밥을 먹으러 갔다. 내가 사 먹으려는 히레가스 정식은 보통 2시까지만 파는, 이런저런 메뉴들을 조금씩 담아서 파는 런치메뉴였다. 간만에 기름에 튀긴 음식 좀 먹겠구나 하고 막 젓가락을 들려던 찰나에, 뭔가 낯선 메뉴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조그만 그릇이 담겨 나온 국물 떡볶이였다. 아니 일식 하는 집에 웬 떡볶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일단 하나 집어 맛을 보았다. 적당히 맵고 적당히 짜고 적당히 달짝지근한 그 떡볶이는 맛있었다. 떡이 너무 잘 익어 젓가락으로 잘 집어지지 않는다는 점만을 제외한다면. 이거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랬어야 했다. 세 개인지 네 개째를 집어먹던 순간, 떡은 아차 하는 사이 젓가락 사이를 빠져나와 새로 입고 나갔던 오트밀 색 니트 앞자락으로 장렬하게 다이빙을 했다. 업장에 나 말고 다른 손님들도 있었으므로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 않으려고 나름 조심했지만 내가 정말 내 의도대로 조용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처음 입고 나간 옷을 버리고, 남은 밥은 뭘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계산을 마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에 붙어 서서 양념이 묻은 위에 물을 묻히고 손세정용 세제를 찍어다 바르고 한참을 문지르는 부질없는 짓을 했다. 아니 그러게 일식 돈가스 하는 집이면 팔던 거나 팔면 되지 웬 어울리지도 않는 떡볶이야. 그런 괜한 불평도 한참이나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떡볶이 양념이 묻은 니트에 주방세제를 바르고 두 번 세 번 비비고 또 비볐다. 웬만큼 졌다 싶어 세탁기에 넣고 빨았다. 소소하게 튄 곳은 얼추 졌으나 떡이 처음 부딪힌 곳으로 예상되는 부분에는 아직도 희미하게 벌건 양념자국이 보였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고, 다시 주방세제를 찍어 바르고 한참을 문질러 다시 빨았다. 그 꼭지 돈 기세에 순순이 져 주지 않으면 뭔 일이 나도 나겠다 싶었던지, 그렇게 두 번째로 빨아 꺼내본 니트는 그래도 얼룩이 제대로 져 있었다.
옷 사면 맨날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색만 산다고, 환하고 예쁜 색깔 좀 사서 입으라고, 그거 늘 당신이 하던 말이지 않으냐고 볼멘소리로 따졌다. 그래서 별로 소질도 없는 오트밀색씩이나 샀더니, 개시하는 날 이런 식으로 '데코'를 해 주는 거냐고. 그러니까, 화이트데이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뭐 그런 거냐고. 근데 아무리 그래도 오트밀색에 빨간 데코는 좀 안 어울리지 않냐고. 뭐 덕분에, 나는 떡볶이 양념이 옷에 묻어도 빨리 주방세제를 바르고 벅벅 문질러서 빨면 웬만큼은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 사실을 언젠가는 크게 써먹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껏 그가 떠난 후 내가 하는 일들은, 대개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다 끝나고 난 후 돌아보면 그래도 최선의 결과를 맺었으므로.
얼마 전 일 때문에 홍대에 나갔다가 근처에 있는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에 가서 10번과 14번이 붙은 배지를 샀다. 그중 10번을 그의 봉안당 안에 넣어놓고 왔다. 아무래도 맨입으로 받아먹기는 머쓱하던가 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괜찮아졌다. 거짓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