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 맛 맨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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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한동안 집 앞 편의점에서 고만고만한 맥주를 주말마다 사다 먹는 데 재미를 들였던 적이 있었다. 날도 추워지고 해서 한동안 그러지 않았었는데 날이 슬슬 따뜻해져서 그런지 또 간만에 맥주 한 잔 생각이 쏠쏠하게 나서 저녁 무렵 또 편의점에 들렀다.


이미 브런치에 한 번 쓴 바가 있는 것 같지만 맥주 고르는 내 타율은 영 좋지가 못해서 거의 멘도사 라인을 오락가락할 정도다. 그래서 사실 뭘 구경한답시고 이것저것 보지 않고 이미 수 차례 사 마셔 보고 검증을 끝낸 몇 가지 맥주 안에서 사들고 나오는 것이 무난하다. 그러나 늘 그렇게 생각을 하고 가면서도 막상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 알록달록한 캔들이 가득 찬 냉장고 앞에 서면 나는 또 정신줄을 놓고 오늘은 뭐가 맛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 결과가 대개 좋지 않았던 것은 편리하게도 다 잊어버린 채로.


어제 내 눈에 띈 것은 그나마 맥주도 아닌 캔으로 나온 칵테일이었다. 그러니까 요즘 유행한다는 하이볼 뭐 그런 종류인 모양이다. 가격은 무려 6천 원도 넘어서 늘 사는 맥주보다 한배 반 정도 비쌌다. 그래도 오랜만에 먹는 술이니 좀 비싼 걸 먹어보자 싶었다. 두 가지 타입이 있었는데 하나는 내가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고 하나는 그나마 이름 정도는 아는 맨하탄이었다. 무려 칵테일의 여왕이라는 그 맨하탄 말이다. 그래서 일단 맨하탄을 골랐다.


집으로 돌아와 벌려놓은 일을 좀 하다가 큰맘 먹고 사 온 맨하탄을 땄다. 그러나 첫 모금을 마신 내 쇼감은 글쎄 이게 여왕씩이나 되나 하는 애매한 느낌이었다. 체리 맛이 연하게 받혔고 탄산감이 부들부들한 느낌이긴 했다. 그러나 내 입에는 어딘가 칵테일의 여왕이라기보다는 그냥 박카스 맛처럼 느껴져서 나는 한참이나 당혹감에 입맛만 쩝쩝 다셨다. 이게 원래 이런 건지 아님 내가 먹을 줄을 몰라서 이런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서울에 살 때 그와 가끔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갔던 칵테일 바가 한 군데 있었다. 그도 나도 그 집의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를 좋아했다. 내가 먹어보는 모든 칵테일의 기준은 그 집의 롱티다.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는 상당히 단 맛이 강하고, 도수도 생각보다는 제법 세다. 그런 칵테일을 기준으로 다른 칵테일을 평가하니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래서, 이번 주도 맛있는 술 고르기는 대략 실패다. 내 타율은 언제쯤 멘도사 라인 위로 올라갈까. 아니 그 이전에, 혼자 먹어서 맛있는 술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그것부터가 좀 고민이긴 하다. 그 집의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를 다시 마실 기회가 생긴다 한들 그때만큼 맛있을 것 같지가 않다. 지나간 과거와 싸우는 일은 언제나 씁쓸하고 서글프다. 그것들은 대부분, 아마도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것들이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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