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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r 22. 2024

별 것 없습니다

-116

며칠 사이 구독자 수가 100 가까이 늘어서 300을 훌쩍 넘기고 350도 넘겼다. 단일 조회 수가 30만 뷰가 넘는 글도 하나 생겼다. 보통 100에서 150, 기껏해야 200 정도를 찍던 하루 조회수가 연일 3, 4천을 찍고 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아침마다 글을 쓰기 전 통계 페이지를 열어보고 잠깐 어안이 벙벙해지기를 며칠째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며칠 전에 쓴 그 크래커 글이다. 나름 어디에도 상세한 제품명은 쓰지 않고 두리뭉실 스쳐 지나가는 글로 쓰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는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살다 살다 브런치에 쓴 글에 댓글이 스무 개 가까이 달리는 날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대부분의 댓글이 좋은 말씀이셔서 내가 또 뭘 잘못했나 하고 도지는 새가슴병을 진정시키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다만 문제는, 그렇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가시는데 이런 너저분한 글을 계속 써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며칠 째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물론 나는 하루에만 수천 명씩 방문하시는 분들을 내 브런치로 데려오기 위해 그 어떤 '호객행위'도 낚시질도 하지 않긴 했지만 과연 그걸로 괜찮은 건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왔다 가시는데 뭐라도 좀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닌지. 맨날 거기서 거기인 일상 속에서 오늘은 뭘 먹고 내일은 무슨 꽃을 샀으며 모레는 무슨 프로그램을 봤다는 이야기만 주구장창 계속해도 되는 건지. 브런치를 오픈한 지 거의 2년 만에, 그런 매우 실존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고민을 해 본들, 뭘 어쩌겠나. 지금껏 내가 이 브런치에 구질구질한 신변잡기만을 써왔던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쓸 수 있는 내용이 그런 것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게는 어디 멋지고 근사한 곳에 여행을 다녀온 경험도 없고 예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으며 요즘 핫하다는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대한 지식도 없다. 내가 하루에 한 번씩 주절주절 쓸 수 있는 거라고는 그래서, 오늘은 뭘 먹고 내일은 무슨 꽃을 샀으며 모레는 무슨 프로그램을 봤다는 안물안궁 구질구질한 이야기밖에는 없다.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에 없는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게 이런 얘기밖에 없다. 제아무리 멋지고 근사한 글을 쓰고 싶어도 내 속에 든 것이 그런 것들밖에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아예 대놓은 소설도 아닌 바에야 더더욱.


그래서 이 브런치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무슨 관훈클럽 토론회 주제로나 어울릴 법한 고민을 잠깐 하다가 나는 또 그렇게 내 편한 대로 생각해 버리기로 한다. 뭔가 손님을 초대해 놓고 밥솥에 식은 밥 한 덩이 없어서 부랴부랴 배달음식을 시켜 내놓는 느낌이라 좀 민망하고 머쓱하긴 하지만 이 집주인이 원래 그렇게 뒷손이 없으니 어쩌겠느냐고. 어차피 브런치에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유익한 글들을 써주시는 다른 작가님들이 많으니 그런 글은 거기 가서 읽으시고, 여기서는 그냥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나 한 자락 듣고 가시라고. 어쩔 수 없다. 속에 없는 것은 글로 쓰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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