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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r 23. 2024

나 하나 거둬 먹이기도 힘들다

-117

봄이라 그런지 뭔지, 점심을 먹고 책상 앞에 일 좀 하느라고 앉았다가 약 먹은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조는 일이 잦아졌다. 도저히 못 견디고 30분만 자자고, 아예 목베개까지 끼고 자버리는 일도 가끔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제대로 낮잠을 자버린 날은 대개 밤에 잠이 쉽게 들지 않아 고생하고, 다음날 아침에 장렬하게 늦잠을 자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제도 대강 그런 날이었다. 생각보다 좀 일찍 잠에서 깬 바람에, 눈 딱 감고 일어날까 조금만 더 잘까를 머리 터지게 고민하다가 조금 더 자기를 택한 것이 문제였다. 벌에라도 쏘인 듯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아침 정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자리에 앉아 오전에 처리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그러고 있자니 점심 먹을 시간이 돌아왔다. 세상 귀찮았다. 언제 밥 해서, 언제 또 이것저것 끓여서, 언제 먹고 언제 치우고 언제 일하나. 그런 걸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며칠 전 파업 이후로 어딘가 수상한 밥솥에 밥을 안쳐놓고 그걸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내게는 나름의 스트레스였다. 아, 정말이지 달에 가면 뭐 하고 화성에 가면 뭐 하나. 하나만 먹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는 그런 알약 하나 못 만드는데. 한참을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리고 나는 결국, 2주쯤 전에 사다 먹은 계란말이 김밥이나 사다 먹는 것으로 금요일 점심을 때우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니다. 식구 중에 입맛이 까다롭거나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아무 거나 차려서 먹으라고 들이밀기가 꺼려지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밥을 챙겨 먹여야 할 것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가끔, 나는 나 하나를 거둬 먹이는 것도 힘에 부쳐서 온갖 핑계를 다 대고 밖에 나가 밥 먹을 궁리를 한다. 원래 커피와 밥은 남이 해주는 것이 제일 맛있다고들 하지만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건 날마다 식구들을 건사하느라 애를 먹는 분들 뿐이다. 나 하나 챙겨 먹이는 것도 귀찮고 힘들어서 툴툴거리는 내가 변명거리로 써먹을 만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뭐 계란말이 김밥으로 간편하게 한 끼를 잘 때우기는 했으나마 이렇게 게을러터져 가지고 어떻게 살 건가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밀려 나오는 그런 하루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 하나 거둬 먹이겠다고 2주에 한 번꼴로 식단을 짜고, 그 식단에 맞춰 장을 보고, 매 끼니 요리를 해주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오늘 밥 하는 거 너무너무 싫고 귀찮으니 대충 시켜 먹고 때우자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내 입 하나를 건사하지 못해서 이렇게 쩔쩔매는 꼴을 보면 도대체 뭐라고 할 건지, 그런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리 좀 알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나 하나 거둬 먹이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를. 그랬더라면 당신이 해주던 그 많은 것들을 조금 더 감사하면서 먹었을 텐데.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봤자 늦어서 후회라고 한다. 오늘도 그런 생각에 가슴이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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