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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r 26. 2024

벌써 2년

-120

4월에는 그를 만나러 갈 일이 많다. 그가 떠난 날이 양력 날짜로 들어있고 대개의 경우 음력으로도 들어 있으며, 그가 떠난 날로부터 닷새 후면 그의 음력 생일이다. 그렇다는 말은 저 언저리 어딘가에 그의 양력 생일도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대강만 따져도 나는 4월 한 달 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그를 만나러 가야 한다.


그래서 어제는 이 달이 가기 전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으로, 아침 정리를 대강 해 놓고 집을 나섰다.


봉안당에 가서 그의 얼굴을 보고 또 한참이나 귀먹은 푸념을 늘어놓고, 혼자서만 좋은 데 도망가서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나 사는 것도 더러더러 신경 좀 써주고 하라는 강짜를 한참이나 부려놓고 나는 그의 기일에 맞춰 제사상과 제례실을 예약했다. 마누라라고 하나 있는 게 뒷손도 없고 할 줄도 모르고, 어찌어찌 뭘 준비했다 한들 그 흔한 차도 없고 면허도 없으니 거기까지 음식을 싸들고 갈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핑계를 대고 그냥 올해도 봉안당에서 준비해 주시는 제사상으로 그의 2주기를 치르기로 했다. 그리고 새삼스레 실감한다. 그가 그런 식으로 훌쩍 내 곁을 떠난 것이 벌써 2년 전의 일이구나, 하고.


그에게는 자신이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모종의 예감이 있었던 것도 같다. 건강이 이렇게 나빠지기 전부터도 그는 종종 이러다가 내가 먼저 가면 너는 어떻게 살 거냐고, 걱정 반 농담 반의 말을 하곤 했다. 그때는 한참 젊은 사람이 왜 저런 재수 없는 소리를 잊을만하면 자꾸 하는가 싶어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고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대개 그러기만 하라고, 보란 듯이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먹고 있다가 따라 죽어버릴 거라는 모질고 독한 말로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예고'하던 대로 그가 떠나가고 2년이나 되는 시간이 지나도록 나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오늘은 뭘 먹고 뭘 마시며 무슨 재미난 일을 하며 살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이런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그와 함께 같이 본 영화 중에 '타이타닉'이 있다. 그때만 해도 어렸던 나는 그 영화를 다 보고 그에게 그렇게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여주인공은, 그렇게 사랑한 사람이 자기 눈앞에서 죽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오래 살아있을 수가 있을까 하고. 정말로 사랑했으면 꼭 자살이 아니라도 너무 슬퍼서 얼마 못 살고 따라가게 되지 않느냐고. 그 말에 그는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랑한 사람이 자기더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고 자기 목숨까지 다 주고 갔으니까 그만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리고 어제 봉안당을 나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나는 20년 가까이 잊고 있었던 그 대화를 불쑥 떠올렸다. 어쩌면 그를 그렇게 갑작스레 보내 놓고도 따라가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서, 그 핑계를 찾으려다 보니 떠오른 말인지도 모르지만.


한 번만 물어보고 싶다. 거기서 잘 지내냐고. 나는 여기서 이렇게, 오늘은 뭘 먹고 뭘 마시며 무슨 재미난 일을 하며 살지를 고민하며 멀쩡하게 살아 있다고. 행복한지까지는 모르겠고, 로즈가 그랬듯 다른 사람을 만나 아들 낳고 딸 낳기는 이미 틀린 것 같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렇게, 너무 험한 마음만 먹지 않으면서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뿐인 것 같다고. 더러 마음에 안 들고 눈에 안 차더라도 너무 야단치지는 말아 달라고. 그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고작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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