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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30. 2024

물올림 그거 뭐 소용 있나?

-155

영어로 스토크, 우리나라 말로는 비단향꽃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꽃에 대해서는 이미 쓴 적이 있다. 그가 떠나고 난 후 처음 사다 놓았던 프리지아의 바로 다음 꽃이기도 했다. 일단 드라마 제목인 줄만 알았던 그 말이 꽃 이름이라는 점에 놀랐고 그 꽃이 생각보다 향기가 진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꽃은, 불행하게도 그리 오래가는 꽃은 못된다. 꽃병에 꽂아두면 사나흘쯤 후부터 줄기가 물러지기 시작해서 정말 급속도로 시들어버린다. 그 모양을 두어 번 보고 났더니 사다 놓을 엄두가 잘 안 나게 변해버린 꽃이기도 하다.


그의 책상에 두었던 두 가지 색깔의 분홍색 장미가 슬슬 시들어가서 이제 또 다음 꽃을 사보려고 오랜만에 마트 화훼 코너에 갔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카네이션이 색깔 별로, 종류별로 잔뜩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옆에, 쨍한 보라색 스토크가 한 다발 꽂혀 있었다. 흰색 스토크도 봤고 분홍색 스토크도 봤고 연한 보라색 스토크도 봤지만 이런 짙은 보라색이 나는 스토크는 처음이라, 나는 이거 오래 못 가는데 하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그 보라색 스토크 한 다발을 사서 집으로 가져왔다.


그러고 보니 스토크는 물올림이 필수라는 글을 인터넷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물올림이란 꽃의 줄기를 사선으로 자른 후 뜨거운 물에 10초 정도 담가서 줄기의 물관을 뚫어주는 작업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꽃이 좀 더 싱싱해지고 오래간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 작업을 해서 딱히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간 한 물올림은 다 꽃들이 일정 수준 이상 시들시들해지고 난 후에 시도했고, 그럼 오늘은 아예 생생할 때 한 번 해보자 생각하고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자른 줄기만 잠깐 담갔다가 새 물을 담은 꽃병에 옮겨 꽂았다. 그러면서도 반신반의했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거지 뭐. 딱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물올림 작업을 해준 덕분인지 이 녀석들이 물을 자주 잘 마시고 있다. 꽃병에 담은 물이 저녁 무렵 눈에 띄게 줄어있는 것은 꽃이 그 물을 아주 잘 마시고 있다는 뜻이고, 가외로 기포까지 생겨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고 한다. 심지어 오늘 저녁엔 꽃병의 물이 너무 많이 줄어 있어서 내일 아침이 되기 전까지 다 닳아버리지 않을까 싶어서 긴히 물을 조금 더 부어주기까지 했다.


물론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꽃이란 이렇게 생생한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확 시들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말이다. 나는 그간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시들어버리는 스토크를 적어도 세 번은 봤고, 이번 스토크의 책임은 그래서 막중하다. 사 오자마자 꽃병에 꽂기 전에 물올림을 해주면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기만 한다면 앞으로는 저 향기 좋고 몽글몽글한 스토크도 조금 더 자주 사다 꽂아놓을 수 있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늘어난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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