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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03. 2024

다이어리 케이스 쓰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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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는 핸드폰의 후계기종이 나온 걸 알면서도 눈 질끈 감고 패스하기로 마음먹은 지가 몇 달쯤 됐다. 그 분풀이 아닌 분풀이로 이 참에 케이스나 하나 새로 사서 갈아 끼워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참이었다. 어차피 핸드폰 본체를 바깥에 꺼내놓고 쓰지도 않는 바에야 케이스만 바꾸면 또 핸드폰을 새로 산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한 달 정도는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도 몇 번 지적한 적이 있듯이 물건을 고르는 내 기준이라는 것은 까다롭지 않은 척하면서 은근히 복잡하다는 게 문제였다. 핸드폰 케이스의 경우는 대략 이렇다. 카드 및 간단한 지폐 등이 수납 가능하고 액정을 가릴 수 있는 다이어리 케이스일 것. 플립을 여닫는 부분은 똑딱이 단추가 아닌 마그네틱일 것. 카드 수납부는 세 장 정도가 적당하며, 별도의 수납 칸이 한 장 정도 더 들어서 플립을 닫았을 때 두께가 지나치게 두꺼워지지 않을 것. 색상이 너무 현란하거나 디자인이 조잡하지 않을 것. 언젠가 핸드폰 케이스 하나 고르느라고 몇 날 며칠을 장고하는 나에게 무슨 핸드폰 케이스 하나 사려면서 그렇게 목숨을 거느냐고 묻는 그에게 이런 조건을 설명했을 때 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너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하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오랜만에 지인 분에게 전화가 왔다. 밥 챙기는 게 귀찮아서 죽을 것 같다고, 내가 나 하나 챙겨 먹이는 게 이렇게 귀찮을 줄 몰랐다는 말에 한참이나 웃으시더니 입 하나  거둬먹이는 거 가지고 그런 소리 하면 혼난다고 대꾸하셨다. 그렇게 한참이나 피차간의 사는 이야기, 갑자기 푹해진 날씨 이야기,  선풍기를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불쑥 핸드폰 케이스 이야기가 나왔다. 돈 없어서 핸드폰은 못 바꾸고 케이스 하나 바꾸려는데 뭐가 참 쉽지 않다고, 물 좋고 정자 좋고 반석 좋은데 찾는 건 언제나 어려운 법인 모양이라고. 그 말을 듣고 지인께서는 다이어리 케이스 찾는 걸 보니 너도 아줌마 다 된 모양이라고 한참을 웃으셨다. 아니, 다이어리 케이스가 왜요. 그게 얼마나 실용적인데. 요 앞 가까운데 잠시 나갈 때는 지갑 없이 핸드폰만 하나 달랑 들고나가면 돼서 얼마나 좋은데요. 그리고 잘못해서 핸드폰 떨어뜨렸을 때 액정 안 깨지게 완충도 된단 말이에요. 그러나 어림없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요즘 젊은 애들은 다 범퍼케이스나 젤리케이스 같은 걸 쓰지 다이어리 케이스 안 쓴다고, 너도 이제 별 수 없이 아줌마야, 하고 한참을 웃으셨다. 하기야 낼모레 50이면 그게 아줌마지 아가씨는 아니지 않냐는 말씀과 함께.


말인즉슨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만 나이까지 동원해 가며 40대 중반이라고 우길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올해, 혹은 내년까지가 마지노선이다. 그러면 뭐, 그게 아줌마지 별 게 아줌마냐 싶다가도 나도 모를 억울한 기분에 괜히 웅얼거려 본다. 아니 근데 난 진짜 아가씨 때부터도 핸드폰 케이스는 다이어리 타입만 썼다고. 그러니까, 그게 나이 들거나 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나 어째 변명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만 궁색해지는 기분이 들어 오늘의 핸드폰 케이스 찾기는 그냥 그쯤에서 그만하기로 했다.


그래도 못내 억울한 생각이 들어 입이 한 발은 튀어나와 있었다. 다이어리 케이스가 얼마나 실용적이고 편하고 좋은데. 그런 걸 선호하는 거랑 내가 낼모레 50인 게 무슨 관계가 있냐고, 아무도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 같은 거 없는데도 괜히 툴툴거린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젊은 애들이 쓴다는' 범퍼케이스를 살 엄두는 안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진짜 아줌마 다 된 게 맞나 싶기도 하다. 뭐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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