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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06. 2024

어린이날에 비가 내리면

-161

아이를 갖지 않은 것은 그의 생각이었다. 지면에 차마 다 적기 난감한 가족사로, 그는 본인이 별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이 힘들고 피곤한 세상에 애를 태어나게 해서 그 애한테도 살아가는 고통을 물려주는 것도 할 짓은 아니고, 애 하나 낳자고 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네가 죽어도 아이를 갖고 싶은 게 아니라면 둘이서 평생 기대고 그렇게 살자고 그는 말했었다. 그게 지금 생각하니 젊은 나이에 이렇게 훌쩍 떠날 줄 알고 너한테 짐 되지 말라는 뜻에서 그런 거였나 보다고, 나는 아직도 잊을 만하면 그런 말을 한 번씩 주위에서 듣곤 한다.


어제는 어린이날인데 비가 왔다. 좀 오다 마는 것도 아니고 무려 산사태 조심 운운 하는 안전문자가 올 정도로 비가 왔다. 오늘 또 전국의 많은 가정에서 입이 한 발은 튀어나온 아이들을 달래느라 많은 부모님들이 애를 먹고 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놀이공원이 있다. 그 근방은 상시로 차가 막히는 상습 정체구간이기도 하다. 그 근처를 지나다가 길이 왜 이렇게 밀리냐고 물어보면 거기 근처잖아 하는 대답이 돌아왔고 나는 아, 하고는 그냥 넙죽 입을 다물곤 했다. 그와 나는 몇 년 전 10월쯤 그 놀이공원에 놀러 가서 하루 재미있게 놀고, 철맞춰 핀 꽃구경도 하고, 밤이 되면 볼 수 있는 퍼레이드까지 알차게 구경하고 집에 온 적이 있다. 그날도 그는 집에 애라도 하나 있으면 철 바뀔 때마다 이런 데 와서 놀아주느라 돈은 돈대로 쓰고 사람은 사람대로 녹초가 될 테고, 참 애 하나 키우는 것도 할 짓 아니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별 생각도 없이 그러게 하고 맞장구를 쳤었다.


그가 훌쩍 떠나고 난 후 상담을 받으러 다니면서 나는 몇 번 그런 말을 했었다. 지금 내게 애가 없어서 참 다행이라고. 나 하나도 제대로 버텨내지 못하던 그 당시의 내가, 아빠를 잃고 졸지에 하나 남은 엄마의 자격으로 아이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끔 눈앞이 캄캄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반면에, 그런 식으로 훌쩍 떠나버린 그를 나와 함께 기억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나는 아마도 꽤나 오래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겠지만 그건 오직 나 혼자만의 몫이며, 그 누구도 그 외로움에 동참해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가끔은 나를 참 씁쓸하게 한다.


어차피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지도 못할 것, 괜히 애 같은 걸 낳아서 안 그래도 어설픈 내가 사는 걸 더 힘들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건 충분히 그다운 생각이고 그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했음직도 하다. 그러나 가끔은, 이렇게 훌쩍 떠나버린 그 빈자리에 너무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서 내내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나중에, 아주 먼 훗날에 다시 만났을 때 안면몰수할 빌드업인 거면 가만 안 둬. 그냥 그렇게 중얼거리며 액자나 한 번 흘겨본다. 어느 비 오는 어린이날에.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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