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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10. 2024

감자튀김까지 매워버리면

-165

기름에 튀기면 신발 밑창도 맛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그냥 있는 건 아니다. 기름에 튀긴 음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끔 솔깃하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반면에 집에서 해 먹기에는 상당히 손이 많이 가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튀겨낸 결과물이 썩 마뜩잖은 경우가 많아 심히 노동 대 성능비가 떨어지는 바, 이래저래 자주 먹을 수는 없는 음식이기도 하다. 바깥에 나가서 밥을 사 먹을 일이 있을 때마다 돈가스 같은 걸 먹게 되는 것도 아마서 그래서가 아닐까.


오후쯤이었다. 근 2주를 매달려 하던 일 하나를 마무리해 메일로 보내놓고, 아 뭐 좀 맛있는 거 사다 먹을 만한 것 없나를 한참 고민하다가 불쑥 감자튀김이나 좀 사다 먹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서 몇 분 정도 걸어 나가면 다름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한 군데 있고, 거기서 행사하는 날짜에 맞춰 햄버거나 치즈 스틱 같은 걸 사다 먹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시즈닝을 뿌려서 먹게끔 되어 있는 감자튀김도 행사 중이라는 알림이 와 있기도 해서, 그냥 감자튀김이나 한 봉지 시다 먹고 일 끝낸 턱을 하기로 했다.


앱으로 미리 주문을 해 놓고 감자튀김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불쑥 깨달았다. 아, 시즈닝 주문 잘못한 것 같은데. 나는 그 감자튀김을 사다 먹을 때 대개 양파맛 시즈닝을 고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새 시즈닝이 추가된 건지 디폴트가 무려 김치맛으로 잡혀 있어서 몇 번 식겁을 하고 옵션을 바꾼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2주나 매달려 있던 일을 턴 것에 신이 나서 시즈닝 바꾸는 걸 잊어버리고 그냥 주문을 해 버린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가서 바꿔달라고 해볼까. 그러나 그러려니 귀찮았다. 그리고 뭐, 이럴 때 한 번 먹어보는 거지 언제 내가 김치맛 감자튀김 같은 걸 먹어보겠냐고, 귀찮게 반쯤 온 길 되돌아가 이런저런 아쉬운 소리 하는 게 귀찮고 싫은 핑계를 그렇게나 한참 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랬어야 했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었다. 너무 매웠다. 시즈닝을 뜯는 순간 매운 냄새가 훅 끼쳐 두 번쯤 연속으로 재채기를 했다. 발갛게 시즈닝이 묻은 감자튀김은, 맛있긴 했는데 내 입엔 너무 매웠다. 나중엔 입속이 화끈거리고 얼얼하기까지 해서, 오후 시간 내내 천천히 마시려고 따라놓은 커피를 반 잔 가까이 벌컥벌컥 마셔야 했다. 안 그래도 매운 음식 천지인 세상에 감자튀김까지 매울 필요가 있냐고, 나 같은 사람은 도대체 뭘 먹고살라는 말이냐고 한참을 투덜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젠 살다 살다 더 매운 라면에 더 매운 볶음면도 모자라서 감자튀김까지 매운 세상이라고, 나 이 풍진 세상 어떻게 살지, 라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액자에 대고 몇 마디 해 본다. 그 또한 나 못지않은, 아니 나보다 더한 맵찔이였으니 이 감자튀김을 사 와서 나눠먹었다가는 둘이 나란히 눈물 콧물을 빼면서 감자튀김까지 매워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한참이나 투덜거렸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혼자 좀 웃었다. 어쩌면 어제의 그 감자튀김도 둘이 나눠 먹었으면 조금 덜 매웠을지도 모르는데.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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