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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14. 2024

작약은 아직이니까

-169

그가 어지간하면 떨어뜨리지 않는 채소 중 하나가 표고버섯이었다. 국물을 내는 데도 좋고 잘게 다져서 볶으면 식감도 좋고 향도 좋아서 자기가 보기에는 자연산 송이버섯보다 훨씬 가성비 면에서 뛰어난 것 같다고, 그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 또한 어지간해서 표고버섯을 떨어뜨리지 않고 사다 놓고, 국을 끓이거나 볶음밥을 할 때 한 개씩 꼭꼭 썰어 넣는 편이다.


냉장고에 굴러 다니던 두어 개 남은 감자가 슬슬 싹이 나기 시작해서 오늘쯤에는 먹어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자국이나 끓여야겠다, 하고 냉장고 안을 뒤져보니 표고버섯이 마침 다 떨어지고 없었다. 그 핑계를 대고 아침에 잠시 마트에 다녀왔다. 오늘은 정말로, 표고버섯만 딱 사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야지. 그렇게 다짐을 했다. 그랬었다.


버섯이 진열되어 있는 매대 근처에 화훼 코너가 있다. 사실 이맘때 진열돼 있을 꽃은 대부분 카네이션일 것이기 때문에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던 건지도 모른다. 소담하게 피어 있는 작고 빨간 꽃의 화사한 색깔에 그만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얼핏 보기엔 소국과 비슷했으나 소국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거기서 발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의 책상에 꽂아둔 장미가 주말을 지나면서 급작스레 상태가 안 좋아지긴 했다는 핑계를 대고 기어이 그 이름 모를 빨간 꽃을 한 다발 사 왔다.


집에 와 포장을 뜯고 줄기를 다듬으면서 보니 역시나 이 꽃은 소국 종류는 아니었다. 그래도 올망졸망하게 빨갛게 피어있는 꽃들이 보기에 퍽 소담스럽고 귀엽기는 했다. 그렇게 꽃병에 꽂아놓고 이미지 검색으로 알아본 결과 이번에 사 온 꽃은 소위 좁은잎 백일홍 혹은 미니 백일홍이라고 하는 백일홍의 아종인 모양이다. 백일홍이든 이 좁은잎 백일홍이든 다 같이 국화와 비슷한 과의 꽃이라고 한다. 첫눈에 닮아 보인 것이 그냥 그랬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아무려나, 주말에 크고 풍성한 작약을 받아서 꽂아놓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또 새 꽃을 사 와 버렸다. 뭐, 빨간 꽃은 제법 오랜만이고 늘 보던 '아는 꽃'이 아닌 뉴 페이스는 또 오랜만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꽃이 이렇게 귀엽고 예쁘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해 버리기로 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예쁜 것에는 죄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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