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슬픔의 보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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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햇수로 3년, 만으로 따져 2년 정도 활동한 카페가 있었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나 혼자만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그 카페에서 나와 친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를 자주 했었으니까. 물론 그중엔 좋은 말만 있진 않았고 험담도 다수 있었다. 그땐 이렇게 될 줄을 몰랐으니까.


그가 갑작스럽게 내 곁을 떠나고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후, 나는 카페에 혼자 남은 상실감을 종종 토로했다. 뭘 어떻게 해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애초에 누가 무슨 조치를 해줄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그냥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사람이 산봉우리에 올라 고함을 지르듯이, 그냥 아무에게나 아무렇게나 털어놓는 방백에 가까웠다. 그런 글들에는 항상 조심스러운 위로의 댓글들이 달렸다. 그 마음씀들이 감사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와 그분들의 사이에 한 겹의 벽이 생긴 것을 알았다.


아무도 내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일상을 공유하는 곳에서 생기게 마련인 이런저런 이벤트들과 대화들에서 나는 언제나 열외였다. 그것은 물론 소위 '따돌림'의 의미는 아니었고, 그분들 나름의 나에 대한 배려였다. 30년 가까이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제정신이 아닐 것이 분명한 나에게 그 어떤 것도 먼저 들이대기는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들은 마치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을 모든 훈련과 공사에서 배제하듯이, 그렇게 나를 '놓아두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얼마 전에야 깨닫게 되었고 그 사실은 내겐 매우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억지로 끼어들어 보기도 했다. 저 요새 심심해요. 외로워요. 놀아주세요. 그런 글들을 올려보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던 몇몇 분들에게는 안부인사를 핑계로 먼저 대화를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나는 점점, 그곳에서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큰 일 겪은 사람. 요새 마음고생 심한 사람. 그러니 함부로 말 걸면 안 되는 사람. 그런 식으로, 나는 어느새 그곳에서 유리돼 혼자 겉돌고 있었다. 결국 나는 지나간 3년의 시간을 묻고 그곳을 탈퇴했다.


'코스모스'를 다 읽은 후 다음 순서로 읽기 시작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그런 말이 나온다. 사람은 결국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며, 타인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을 투영해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것일 뿐이라고. 비슷한 일을 겪고 서로를 위로한다는 명백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일상 이야기나 나누는 카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반려자를 떠나보낸 나의 존재가 그분들에게는 어쩌면 꽤나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이란, 이별이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를 볼 때마다 느꼈을 테니까. 장례식에 다녀온 사람이 어깨너머로 소금을 뿌리듯, 그렇게 그분들에게 나는 어디 안 보이는 곳으로 좀 치워놓고 싶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슬픔에도 자가격리가 필요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안타깝게도.



불행은 전염병이다. 불행한 사람과 병자는 따로 떨어져서 살 필요가 있다. 그보다 더 병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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