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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16. 2024

울 일에는 울어야 빨리 낫는다

-171

작년에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내 일상에도 브런치에는 너무 구구절절해 차마 다 적을 수 없는 수많은 복잡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에는 심히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플 때 서러운 건 오래가기 때문인지 그 일은 일 자체의 충격보다도 꽤 오래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어쩌겠나, 하고 그 일을 털어버리는 데만도 대충 몇 달이 걸렸다.


오늘 우연히 그 일을 알고 게시는 한 지인분과 메신저로나마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일부러 대화를 그렇게 몰아간 것은 아닌데 그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 순간 나는 잠시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컴퓨터로 타자 치는 일로 먹고살고 있다지만 나는 내 타자가 그렇게 빠른 줄 어제 처음 알았다. 정신을 차려놓고 보니 스크롤을 두 번 반 내려야 다 읽을 수 있을 분량의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내놓고 난 후였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그 일은 그냥 그렇게 내 안에서 적당히 수습된 것이 아니라 정리할 곳이 마땅치 않아 벽장 안에 대충 욱여넣고 문을 닫아버린 잡동사니들처럼 잠시 내 기억에서 치워졌을 뿐이라는 것을.


속 많이 상하셨나 봐요.


한참 만에야 뜨는 지인 분의 그 한 마디에 창피하게도 눈물이 찔끔 났다. 머쓱함 반, 괜찮은 척하는 것 반 해서 이런저런 변명을 주워섬기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한번 나기 시작한 눈물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계속 났다. 급기야 물티슈를 뽑아 눈가를 훔쳐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훌쩍거리다가, 나는 그 일로 꽤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 일로 '울어 본' 적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울지 말라고 윽박지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울면 내가 지는 것 같아서 있는 힘껏 이를 앙다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어른인 척했다. 그러나 내 속은 그렇게까지 쿨하지도 어른이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메신저로는 간신히 괜찮은 척을 하면서 연신 터진 눈물을 닦아야 했다.


20년 이상을 함께하던 사람을 떠나보낸 것치고는 이만하면 빨리 괜찮아지고 있지 않나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때 참지 않고 많이 울었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야 해 본다. 그 일로 우는 건 최소한 창피하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나를 위해 변명해야 할 정도로 어른스럽지 못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니까. 밥을 먹다가, 자다 깬 새벽에 텅 빈 침대 옆을 보다가, 날씨가 좋을 때마다, 뭔가가 먹고 싶을 때마다, 날씨가 궂을 때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으러 갈 때마다 나는 울었다. 그렇게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고 나니 그 후로는 이제 눈물은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적당히 울지 못한 그 일은 반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옹이로 박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울 일에는 울어야 빨리 낫는다. 애든 어른이든, 쿨하든 핫하든 간에.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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