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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19. 2024

작약은 아직이니까 2

-174

인터넷으로 사는 꽃의 단점이 한 가지 있다. '첫인상'이 그렇게까지 화사하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인터넷으로 사는 꽃들은 배송에 드는 시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인지 약간 덜 핀 상태로 배송되어 오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손꼽아 기다리던 택배를 받아 박스를 열고 처음으로 마주하는 꽃은 그렇게까지 예쁘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튤립 같은 경우는 가뜩이나 긴 줄기에 길다란 이파리에 시퍼런 빛이 도는 봉오리까지 더해져서 꽃이 아니라 무슨 대파 한 단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역시 꽃을 사서 들고 집으로 걸어오는 그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집 근처 꽃집에 가야 한다.


이번에 온 작약도 비슷하다. 처음 택배를 받고 박스를 열었을 때, 나는 그 볼품없음에 솔직히 약간 실망을 했다. 작약은 밋밋한 줄기에 이파리가 그리 많이 나는 꽃도 아니어서, 삐쭉한 줄기 위에 롤리팝 같은 봉오리가 덩그러니 맺혀 있는 것이 고작인 꽃이다. 심지어 그 봉오리조차 채 다 영글지 못한 상태로 왔으니 그 자태가 다소 실망스러웠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아마 일전에 샀던 작약의 그 구름 같은 자태가 잔상처럼 머리에 남아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받은 꽃을 다듬고 물올림까지 해서, 꽃병에 꽂아 그의 책상에 가져다 두었다.


이번에 산 꽃은 작약 다섯 대와 리시안셔스 다섯 대가 섞여 있는 상품이다. 작약은 영 덜 핀 상태로 왔지만 리시안셔스와 덤으로 두어 줄기 따라온 알스트로메리아는 그래도 제법 꽃이 벌어져서 화사하게 피었다. 그리고 작약도 다섯 송이 중 한 송이는 이제 제법 봉오리에 물이 올라 막 개화하기 직전까지 왔다. 지난번 작약은 그야말로 중국 미인도에 배경으로나 그려 넣음직한 붉은색이었는데 이번에 온 작약은 또 그림 같은 핑크색이다. 지난번 작약이 피는 속도를 볼 것 같으면 이 작약은 아마도 내일 중에는 필 것 같아서 내심 처음 택배 박스를 열었을 때의 실망감은 싹 잊어버리고 혼자 들뜨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의 작약 다섯 송이는 아마도 제각기 다른 시간에 피어서 다른 시간에 지겠구나. 그 말인 즉 이번에는 이 작약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할 것이다. 부디 시드는 일 없이, 인간의 손에 꺾인 채로나마 그 수명을 다 하고 아름답게 피다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슬슬 꽃병에 얼음을 한 두 조각 넣어야 하나, 하는 때 이른 생각도 해 본다. 작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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