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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20. 2024

선풍기, 꺼내셨나요?

-175

한낮에 후덥지근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제법 된 것 같다. 아 그냥 선풍기 꺼낼까 하고 다용도실 쪽을 흘끔거린 적도 꽤 된다. 그러나 이제 겨우 5월인데 무슨 선풍기냐는 식의 심리적인 방어선이 작동하고 있기라도 한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아직까지는 선풍기를 꺼내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는 중이다. 아, 물론 전적으로 선풍기를 꺼내서 청소하는 게 귀찮아서일 가능성도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은 미리 자백해 둔다.


어제는 정도가 좀 심했다. 며칠 전 하이라이스를 하겠다고 부러 나가서 사 온 감자를 채 썰어서 감자채볶음을 했는데, 그 별 것도 아닌 감자채볶음을 하면서 콧잔등으로 뒷덜미로 제법 후끈하게 땀이 났다. 조금 푹해진 날씨에 불을 쬐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번 난 땀은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할 때까지도 식지 않아서 날씨가 더워지긴 더워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 날씨 어플에 의하면 어제 최고 온도는 26도인지 그랬던 것 같고, 스르륵 살펴본 다음 주 내내 24도에서 27도를 오르내리는 후덥지근한 날씨가 예정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렇든 저렇든 6월이 되면 아마 도저히 선풍기를 꺼내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날씨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관건은 에어컨 개시를 7월 넘겨서 할 수 있느냐 아니면 그전에 참을성 없이 먼저 하느냐 정도가 될 것이다. 이맘때의 날씨는 걸음이 빠르다. 어어 하는 사이에 날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 순식간에 더워진다. 아직 겨울 옷장 정리도 완전히 다 하지 못했는데 이러다가는 그냥 다음 달쯤에 겨울옷과 봄옷을 한꺼번에 싸 넣는 편이 조금이나마 수고를 더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구러, 별다른 냉방 혹은 난방 없이도 그럭저럭 보낼 수 있던 올해 상반기의 '좋은 시절'은 또 이런 식으로 끝나가는 모양이다. 그리고 저만치 앞에는 또 짧게는 석 달, 길게는 네 달 정도 되는 여름이 손마디를 우두둑 소리 나게 꺾으며 올해는 또 얼마나 몸살 나게 괴롭혀 줄까 하는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이는 듯도 하다. 올해는 또 몇 번의 열대야와 몇 번의 폭염 경보와 몇 번의 국지성 호우와 몇 번의 태풍을 겪어야 이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눈앞이 막막해지는 느낌이 없지 않다.


에라, 모르겠다. 참는 데까지 참아 보고, 도저히 더워서 안 되겠으면 오늘이라도 선풍기 꺼내야지 뭐. 미련하게 참아본들 알뜰하다 참을성 많다 칭찬해 줄 사람이 누구 하나 있는 것도 아니겠고. 더운데 에어컨 안 켜고 추울 때 보일러 안 켜는 건 알뜰한 게 아니라 그냥 미련한 것일 뿐이라고 그는 늘 말했었다. 그러니까 아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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