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May 25. 2024

카페를 만들고 싶었는데

-180

그가 떠나고 나서 어디든 내 마음을 털어놓고 다잡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택한 플랫폼이 하필 브런치였던 것은 왜 그랬을까 하는 게 가끔 스스로 궁금할 때가 있다. 어지간한 포털 사이트에는 다 블로그 서비스가 붙어 있고, 그런 블로그들은 브런치처럼 '작가 신청'을 해서 합격 불합격을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굳이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브런치'라는 이름에서 주는 호감도도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호젓한 동네 카페처럼, 오가며 지나가다나 불쑥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조용히 쉬었다 가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이 브런치를 만들고 꾸린 지 2년이 넘은 지금 이 브런치는 과연 내가 바라던 대로 '카페'가 되었을까.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제 오랜만에 통계 페이지를 구경하러 갔다가 나는 좀 식겁을 했다. 어떤 유입 키워드가 있는지를 보러 갔더니 어제 하루 내 브런치에 걸린 유입 키워드가 무려 427건이나 되었다. 아니 이 뻔하디 뻔한 브런치에 무슨 검색 걸릴 키워드가 400건이 넘어? 싶어서 그 유입 키워드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엉뚱한 키워드는 거의 없었고 다 내가 언젠가 글에 쓴 적이 있는 키워드들 뿐이어서 나는 좀 많이 머쓱해졌다. 백중기도, 욕실 청소, 수건 삶는 법, 핸드폰 케이스, 스토크 물올림 등등.


요컨대 이 브런치는 빨간 로고로 유명한 그 프랜차이즈 생활잡화점조차도 아니고, 변두리 주택가에 가끔 보이는 땡처리 전용 생활잡화점 같은 곳이 된 것 같다. 어딘가 디자인이 후줄근하고 성능은 미덥지 못하며, 그러나 일단 천 원짜리 지폐 한 두장으로 살 수 있는 그런 물건들만 잔뜩 모아놓고 파는. 거기서 사 온 물건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싼 게 비지떡이지 하는 말 한마디로 그냥 넘기게 되는. 하긴 뭐 그럼직도 하다. 700편에 가까운 글을 매일 쓰면서 어떻게 그 모든 글들이 다 주옥같고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지. 내 글은 그저 아주 평범한 중년 여자가 살면서 겪을만한 아주 평범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러니 그런 글에서 추출될 만한 키워드들 역시 어딘가 좀 궁상스럽고 생활냄새 풀풀 나는 그런 것들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 글을 썼으니 그런 검색어만 있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좀, '이 브런치 이대로 좋은가' 하는 류의 생각을 하게 되긴 한다. 나도 좀 우아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었는데. 하긴 이 브런치의 개설 목적 자체가 넋두리 혹은 하소연이니 이미 거기서부터 호젓한 동네 카페 따위와는 백만 년 정도 벗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젠 너무 멀리 왔다. 그냥 쓰던 대로, 하던 대로 하는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림과 미련함의 중간 어디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