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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26. 2024

강한 팀은 불펜이 강하다

-181

식물에도 귀가 있어서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이 말은 맞는 말이다. 심지어는 뿌리가 잘린 채 꽃병에 꽂혀 있는 꽃들조차도 귀가 있어서 저희들을 꽃병에 꽂아놓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순간순간 있다. 그래서 나는 괜히 오며 가며 꽃들에게도 인사 겸 이런저런 말을 좀 걸어보는 편이다. 날씨 더운데 힘내라든지, 주말엔 후임 들여오기가 힘드니 조금만 버텨달라든지 하는 식으로.


아마 며칠 전 판매자 분께 글을 올려서 '피지 않는 작약'에 대해 물어본 것이 작약에게는 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 글을 올린 이후로 그래도 억지로 봐줄 만했던 작약은 거짓말처럼 시들기 시작해서 어제 아침엔 도저히 그의 책상에 놓아두기가 꺼려질 만큼까지 시들고 말았다. 그래서 또 급한 대로, 대타를 구하러 마트 화훼 코너에 갔다. 오늘은 또 무슨 꽃을 얼마나 사 가나 하고 대충 매대를 둘러보는 중에, 청보랏빛이 도는 새치름한 꽃이 눈에 띄었다. 작년부터 업어올까 말까 고민 중인 블루 데이지 비슷하게 생긴 꽃이었다. 보라색 꽃 사다 놓은 지도 좀 되기도 했고, 일단 국화 비슷한 그 생김새가 며칠 정도는 든든하게 버텨줄 것 같은 근거 없는 믿음을 주는지라 한 단을 사 와서 손질해 꽃병에 꽂아 두었다.


집에 와서 이미지 검색을 동원해 찾아본 바 이 꽃의 이름은 우선국이라고 하는 모양이고 역시나 예상대로 소국, 과꽃, 공작초, 블루 데이지 등과 같은 과에 속하는 '국화과'의 꽃인 게 맞았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젠 그래도 꽃의 모양과 이파리 생긴 모양을 보면 어느 꽃과 친척이겠구나 하는 정도는 어림짐작할 수 있게 된 모양이구나 싶다. 부쩍 푹해진 날씨애, 파란빛이 도는 청보라색 꽃은 눈이 시원해 보여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몇 번이나 쓴 바 국화과 꽃들의 가장 좋은 점은 오래간다는 것이니 판매자님이 재배송해 주신다는 작약이 올 때까지는 아마 그의 책상을 잘 지키고 있을 것이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고 그중에서도 불펜이 강해야 좋은 팀이 된다고 한다. 가끔 이렇게,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꽃이 시들 때면 언제나 선발투수에게 급작스러운 난조가 와서 조기강판되었을 때 그 자리를 메꾸러 올라가는 롱 릴리프처럼 국화가 등판하게 되는 느낌이 없지 않다. 곱고 예쁜 데다 믿음직하기까지 하니 아마도 국화는 이래서 사군자 중의 하나에 제 이름을 올린 모양이다. 장미도 백합도 감히 끼지 못한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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