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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27. 2024

이런 재미를 바란 적은 없지만

-182

며칠 전 새벽에 좀 찜찜한 꿈을 꾸고 깬 적이 있었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꿈이었다. 그에게 비길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치우며 살고 있는데 왜 저런 벌레가 생겼지 하는 기분에 꿈속에서도 내내 찜찜해했다. 깨어난 후 찾아본 그 꿈이 그리 썩 좋은 꿈이 아니어서 그날 하루 종일 찜찜했던 기억이 있다.


사는 게 참 재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요 몇 달 새 꽤 자주 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은 그로 너무 꽉 차 있어서 그가 빠져나가버린 내 삶은 잔뜩 살이 쪘다 급작스레 빠지고 난 후에 처진 뱃가죽처럼 그렇게 흐물흐물 늘어지고 있던 중이었다. 뭘 해도 재미있지 않고 뭘 해도 신이 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그런 게 당연하다고, 아마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은 내내 이런 식이겠구나 생각하며 살았다. 요즘 들어 부쩍 오후가 되면 출출하고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니면서도 뭔가가 먹고 싶어지던 건, 그래서 그런 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경상도 말로 '주리난장'을 틀고 있는 나에게, 사는 게 그렇게 심심하면 안 심심하게 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혹은 며칠 전의 그 꺼림칙한 꿈 값이라도 하겠다는 듯, 어제 좀 골치 아픈 문제 하나가 터졌다. 자세히는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작년 상반기 내내 내가 징징거리던 문제와도 맥이 닿아있는, 상당히 머리 아픈 그런 문제다. 처음엔 의자에 주저앉아 공황에라도 빠진 듯 멍해 있었다. 순식간에 기운이 빠졌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여기저기 뭘 좀 알아보려 해도 때마침 어제는 일요일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좀 자고 일어나면 나으려나 생각하고 잠을 청했지만 그 잘 오던 낮잠도 어제는 오지 않았다. 생각에 생각만 꼬리를 물어 결국은 눈물만 왈칵 쏟고, 애꿎은 그의 사진 액자를 향해 혼자만 그렇게 편한 데 도망가서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제발 나 좀 데려가 주면 안 되냐는 협박 섞인 애원을 한참이나 했다.


느닷없는 입원과 퇴원 후로 한 반년 간, 또 평온하다 못해 무료한 매일을 보내며 재밌는 일 좀 생겼으면 좋겠다 하는 배부른 소리를 좀 했더니 그 보답이 이런 식으로 오는 모양인가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실제로 어제 오후 내내 나는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온갖 번잡한 생각들과 싸우느라 딱히 뭘 먹지 않고도 배고픈 줄도 몰랐고 심심한 줄도 몰랐다. 사람이란 참 상대적인 것이고, 동시에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다리를 뻗게끔 생겨먹은 동물인 모양이다.


도리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났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또 내가 할 수 있는 힘껏 그 문제들과 싸워나가는 것뿐이니까. 그래서 오늘은 이 글을 쓰고 난 후 또 봉안당에 가서 그에게 상황 보고를 하고, 당신이 로또 1등 점지해 주는 짬은 아직 없을지 몰라도 이런 일은 그래도 꽤 잘 이끌어주지 않았느냐고, 그러니 한 번만 더 부탁한다는 아쉬운 소리를 하고 올 생각이다. 이런 재미를 바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이상은 또 살아가야 하겠기에.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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