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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29. 2024

오늘 하늘이, 신카이 마코토

-184

며칠 전에 일어난 일로 약간 멘탈에 타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모르던 일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었는데도 그냥 그렇게 좀 은근슬쩍 잘 넘어가주면 안 될까 하는 기대를 꽤 간절하게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힘내려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봐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난 도대체 인생이 왜 이런가 하는 푸념이 저절로 흘러나와 맥이 빠지는 순간이 있다.


어제도 오후쯤 한 차례 그런 고비가 왔다. 자꾸만 치달아가는 마음을 돌리려고 창 밖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너무나 그림 같은 파란 하늘에, 너무나 그림 같은 구름에, 너무나 그림 같은 늦은 봄햇살에 잔잔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거기 그렇게 우거지상 그만 쓰고 나 좀 봐주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그와 나의 오래된 공통 취미이기도 했다. 아마 이 브런치에 들러주시는 분들이라면 내가 슬램덩크니 드래곤볼이니 보노보노니 하는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채셨을지도 모른다. 신카이 마코토 또한 그와 내가 대단히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다. 특히 '너의 이름은'은 너무 재미있게 봐서 한 세 번 정도는 봤던 것 같다. 그는 유독 하늘과 구름, 거기 내리쬐는 햇살을 아름답고 청량하게 그리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그와 나는 언제부턴가 하늘이 유난히 쨍하게 맑게 예쁜 날이면 오늘 하늘이 완전 신카이 마코토다 하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러니까 어제도 그런 날의 하루였던 셈이다. 잠시 하던 근심을 내려놓고 창가로 가서 몸을 반쯤 내밀어가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좋은 시절의, 좋은 하늘이었다. 이런 걸 이렇게 혼자만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해질 정도로.


그가 떠나고 나서 온갖 것에서 그를 찾아내는 버릇이 생겼다. 한참 내리던 비가 내가 나갈 무렵 오지 않는 것도, 한참 덥던 날씨가 내가 나가기 전날쯤 비가 와서 조금 누그러지는 것도, 마트의 배송 스케줄을 잘못 알아 짜놓은 식단대로 밥을 먹지 못하게 돼서 결국은 계란말이 김밥을 사 먹고 밥을 때우는 것도 모두가 멀리서 지캬보던 그가 이쯤에선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은근히 떠밀어주는 것인 양 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해 버리곤 한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것이기라도 한지, 그가 떠나간 2년 동안 내게 벌어진 일들은 크고 작은 우여곡절은 있었으나마 다 돌아보면 '결국은 그게 최선이었던' 방향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마 이번 일도 그럴 거라고, 조금 마음이 무겁지만 억지로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어제의 그 '신카이 마코토'한 하늘도 아마도 그런 뜻이었을 거라고 내 멋대로 생각해 버린다. 아, 그렇게 죽상 좀 쓰고 있지 말라고. 내가 아무려면 널 모르는 척하겠냐고. 내가 있는 힘껏 밀어줄 테니까 씩씩하게, 힘내서 부딪혀 보라는 그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고. 그러고 보니 그가 떠나고 난 후에야 나온 '스즈메의 문단속'을 그는 봤는지 모르겠다. 나는 책으로나마 대충 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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