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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16. 2024

비 온다며?

-202

며칠 새 나도 모르게 에어컨 리모컨을 봉인해 둔 책상 서랍을 흘끔거릴 정도로 날이 더웠다. 이제 겨우 6월 초인데 벌써 이래서 어떡하느냐고, 선풍기 꺼낸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그래도 조금만 더 참아보자에서 그래도 날이 너무 덥지 않나까지를 오락가락하며 보낸 며칠이었다. 핸드폰으로 확인해 보는 수은주는 연일 30도 정도는 우습게 넘어갔다. 그래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오늘 비 소식이 있다는 거였다. 비가 일단 한 번 와서 달아오른 공기를 좀 식혀주고 습기를 싹 거둬가고 나면 한 며칠간은 또 그럭저럭 견딜만하기에. 아닌 게 아니라 어제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보여서 아 오늘은 정말로 비 좀 오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간만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밥 하기 귀찮을 때 사다 먹는 계란말이 김밥이나 사다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것도 괜히 나갔다가 비 맞기 싫어서 다음으로 미뤘다.


그런데 핸드폰의 비 예보가 야금야금 늦어졌다. 처음엔 점심시간쯤 올 거라더니 오후로 늦춰지고 저녁으로 늦춰졌다. 결국 내가 블라인드를 내리고 하루 종일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 시간까지도 비는 고사하고 이슬 한 방울 맺히지 않았다. 야, 이거 뭐냐고, 낚시 그런 거냐고 괜히 억울한 마음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더운 날씨에 밥 한다고 불 앞 왔다 갔다 안 하고 그냥 계란말이 김밥이나 원래 생각한 대로 사다 먹었을 텐데.


그래도 생각해 보면 어제는 그 '낚시' 덕분이었는지 요 며칠 중에서는 그래도 제일 시원한 하루였던 것 같다. 일단 선풍기 뒷면의 모터가 뜨뜻하게 달아오르도록 종일 틀어놓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덥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고, 가끔씩 조금 틀 때마다 나오는 바람도 꽤 시원했으니까. 뭐 내가 원한 간 더위가 조금 수그러드는 거였지 비가 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만하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는가 싶기도 하다.


덕분에 오늘까지는 그래도 30도가 넘어가진 않는 '준수한' 날씨가 될 모양이다. 여름에 더운 거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 뭐 어쩔 수 없다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사람 괴롭히는 건 웬만하면 좀 자제해 달라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어차피 사람 체온보다 바깥 기온이 높이 올라갈 날이 7, 8월 두 달이나 남았고 대충 6월 말부터 9월 중순 정도까지도 그럴 거면 한 해의 4분의 1이나 사람을 못살게 구는 셈인데 벌써부터 그렇게 예열할 필요가 있느냐고. 여기까지 글을 쓰고 보니, 그래봤자 다음 주면 6월 하순이고 그때부터는 정말 꼼짝없는 여름의 한가운데겠구나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난다. 부디 올여름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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