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Jun 18. 2024

내가 갈 데가 어딨어

-204

출근을 하지 않는 내게도 월요병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주로 점심시간에, 나 혼자 먹자고 뭘 만들기가 끔찍하게 싫고 귀찮아지는 타입으로 오는 편이다. 어제도 좀 그런 하루여서, 어떻게든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한 그릇 사 먹고 들어올까 하는 생각을 꽤 간절하게 했다.


문제는 어제가 월요일이었다는 사실이다. 주말 내내 열심히 영업한 많은 가게가 하루 쉬는 날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몇 군데 생각이 나서 찾아본 가게들은 대부분 다 쉬는 날이었다. 결국 지난주에 끓여놓은 카레나 데워서 대충 밥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에이 그러지 말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쇼핑몰 식당가 가서 돈가스 세트나 사 먹고 오자고, 그렇게 스스로 타협했다. 그 언젠가 발렌타인데이에 입고 나간 오트밀색 옷에 떡볶이를 떨어뜨린 그 식당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튀긴 음식이라는 건 오래 안 먹으면 또 솔깃하게 먹고 싶어지는 법이기도 하니까.


내가 기억하기로는 교통카드에 딱 왕복으로 한 번 정도 버스를 탈 정도의 금액이 남아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니 교통카드에는 정확히 870원이 남아 있었다. 결국 현찰을 찾아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나는 또 에라 이렇게 된 거 봉안당이나 갔다 오자고 혼자 급발진을 하고 말았다. 이래서, 한 시간 정도면 넉넉히 돌아올 수 있었던 내 외출은 서너 시간 이상으로 길어졌다.


원래부터도 나설 계획이 있었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할 일을 해놓고 해가 이렇게까지 뜨거워지기 전에 집을 나섰겠지만 오늘은 마치 일부러 해가 제일 뜨거운 시간을 맞춰 가기라도 하는 듯한 꼴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봉안당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는 내내 얼굴에서는 연방 땀이 났다. 그 와중에 핸드폰으로는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알림 문자까지 왔다. 그래도 아직 제대로 된 여름이 아니어서 그런지 구릉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이 더러더러 시원해서 그걸로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그래서 별다른 용건도 없으면서 또 일주일 만에, 그의 봉안당 앞에 새 꽃을 갖다 놓고 한참이나 있다가 왔다. 그냥. 밥 먹기 싫어서 밥 사 먹으러 나갈까 하다가 내친김에 그냥 왔다고. 내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어딨어. 그런 말을 하고 한참이나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못된 사람이다. 자기 옆이 아닌 다른 곳에는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그런 버릇을 들여놓고, 이렇게 훌쩍 먼저 도망가 버리다니.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티슈 두 장만큼의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