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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20. 2024

35도면 봐줘야지

-206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 오늘 날씨가 만만치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제 아침이 꼭 그랬다. 잠도 채 깨기 전인데 일단 덥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꾸역꾸역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면서 오늘 하루는 참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늘 말하는 바 나는 출근을 따로 하지 않기 때문에 출근용 복장과 화장 등을 하는 절차도 죄다 생략이 가능하고 사람들에 시달리며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런데도 한번 달아오른 날씨는 도대체 식을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나는 다른 뭔가를 좀 찾아보느라고 포털 사이트를 뒤지다가 어제 최고 기온이 35도라는 기상예보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그야말로 기함하고 말았다. 아니, 미쳤어? 아직 6월 중순인데 35도라고? 올여름은 기어이 40도 넘어가 보겠다는 생각이야? 뭐 그런 생각이 한참이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는 게 병인지, 한번 그런 소리를 듣고 난 후로는 덥다는 생각만 들뿐 아무 의욕도 나지 않았다. 대여섯 시가 넘어갈 무렵에는 더위를 못 견디고 잠깐 졸기까지 했다. 더 기가 막힌 건, 아무리 더워도 서너 시가 넘어가면 조금 기세가 꺾이는 것이 정상인데 어제는 일몰 후 기온까지도 30도가 훌쩍 넘을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날씨 정말 미쳤나 봐. 그래서 그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죽어도 6월에는 에어컨을 개시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꺾고 어제저녁에 처음으로 에어컨을 들었다. 가뜩이나 요즘 이런저런 잡스러운 생각 때문에 하룻밤에만도 몇 번이나 깨는데 35도를 육박하는 이런 더위 속에서 잠을 설치고 내일 일과 내내 빌빌댈 수는 없다는 다소 구구절절한 핑계가 필요하긴 했지만. 그래서 결국 책상 서랍 속 깊이 넣어두었던 에어컨 리모컨에 건전지를 끼우고 시운전을 돌렸다. 그렇게 에어컨을 켠 지 고작 몇 분 만에 실로 거짓말처럼 집 안은 선선해지고 쾌적해져서 저깟 에어컨이 뭐라고 그렇게 열흘만 더 버티고 켜보려고 그렇게나 용을 썼던가 하는 생각에 조금 머쓱해졌다.


그래도 6월부터 에어컨이라니. 역시 좀 뒤가 켕기긴 한다. 벌써 이래서야 7월 8월 9월까지는 어떻게 나려나 하는 걱정도 된다. 그렇지만 어제 온도가 무려 35도였다니깐. 날씨가 이렇게 미쳤는데 열흘 정도 에어컨 일찍 켜는 것 정도는 좀 봐줘야지 않냐고, 뭐라 그러지도 않는 그의 사진에 대고 사후승인 비슷한 걸 구해 본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잘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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