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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21. 2024

마트 닭강정도 쓸만합니다

-207

나는 속초가 닭강정이 유명하다는 걸 그에게 들어서 알았다. 뭐라고 이유도 한참이나 설명해 줬던 것 같은데 거기까진 기억을 못 하겠고, 다만 속초에는 전국구 급의 닭강정 맛집이 두 군데인지 세 군데인지 있고 택배 판매까지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는 말은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그중 한 집의 닭강정을 몇 달에 한 번씩 시켜서 먹었다. 처음엔 속초에 놀려 갔다가 오는 김에 매장에 들러서 직접 사 왔는데, 닭강정이 매워봤자 닭강정이지 하는 맵찔이 주제에 죽어도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중간맛(그나마 매운맛은 차마 사지 못했다) 닭강정을 사서는 중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 맛이 너무 궁금해 박스를 열고 한 조각씩 맛을 봤다. 맛있었다. 맛은 있었다. 그러나 그 한 조각을 먹는 즉시 둘 다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집에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마시려고 사놨던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셔야 했다. 그때 그렇게 식겁을 한 후로는 맵찔이의 본분을 다해 순한 맛으로 한 박스씩 시켜서 사이좋게, 두 번 정도 나눠서 간식으로 먹었다.


 그가 떠나가고 난 후 가끔 치킨 정도는 시켜 먹게 되었다. 그나마도 혼자 먹기에는 아무래도 흥도 나지 않고 양도 애매하게 많아서 뭘 시켜야 딱 기분 좋게, 괜히 시켰다는 후회를 하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을까를 시킬 때마다 고민하게 되긴 하지만. 그러나 이상하게도 닭강정만은 그렇게 잘 되지 않아서, 그가 떠난 이후 한 번도 닭강정을 먹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있을 때도 한 박스는 양이 많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두 번에 나눠서 먹곤 했으니 굳이 먹자면 한 박스 주문해서 내가 네 번을 먹으면 될 일인데도.


그제 자주 장을 보는 마트에서 당일만 쓸 수 있는 할인 쿠폰 한 장이 날아왔다. 쿠폰이란 참 그 어떤 것보다도 뭔가를 사야 할 것 같고, 이 쿠폰을 그냥 날리는 것은 죄악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다. 다만 그 쿠폰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 주문하던 것보다 1, 2만 원 정도 많은 금액을 사야 했다. 이럴 때면 늘 나오는 전가의 보도 같은 핑계, '마트에서 사는 물건은 다 언제 써도 쓴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열심히 장바구니를 채웠다. 애매하게 돈이 만 원 조금 넘게 남아서, 뭘 좀 사볼까 여기저기를 기웃대고 있던 중에 즉석조리 코너의 닭강정이 눈에 띄었다. 매운 양념은 아니고 허니갈릭맛이긴 했지만 어차피 매운 것도 잘 못 먹는데 뭐 어떠랴 싶어서 욕심껏 한 상자를 담으니 정확히 쿠폰사용 금액에서 190원이 오버되었다. 몹시 뿌듯해하며 주문을 마쳤다.


그렇게 배달되어 온 닭강정을 네 번 정도 먹을 양으로 나눠 세 번 먹을 만큼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머지를 책상 앞으로 가져왔다. 역시나, 뭐 맛있는 걸로 전국구라던 그 속초의 닭강정만은 못하다. 그러나 어차피 혼자 먹을 건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타이밍 잘 맞추면 만원 조금 넘는 가격에 혼자 네 번 정도는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양이 다음날 바로 집으로 배달돼 오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르긴 해도 그때 시켜 먹던 그 닭강정을 지금 다시 시켜본들 그때와 같은 맛은 나지 않을 테니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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