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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23. 2024

굶던가, 운동하던가

-209

하는 짓 보면 귀 엄청 얇을 것 같은데 또 의외로 그렇지 않은 점이 있다 고 그가 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뭘 두고 그런 말을 했는지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확신하는 상식에 관한 한 굉장히 완고한 편이다. 금액 이상의 물품이 들어있다는 랜덤 박스 광고를 보면 그는 은근히 솔깃해했지만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받는 금액 이상의 물건을 넣어서 팔 것이며, 그런 박스가 한 천 개 중에 한두 개쯤 있다 한들 우리 복에 그런 게 걸릴 일은 없으니 못 본 척 하라고 대꾸하곤 했다.


나의 이런 성향은 다이어트에도 좀 드러나는 편인데, 다이어트라는 건 별 게 아니고 그냥 '먹는 것 이상으로 움직여서 몸에 쌓인 열량을 줄이는 것'일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먹기만 하면 알아서 살이 빠지는 약 같은 건 적어도 아직까지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그런 게 존재한다면 거꾸로 하루에 한 알만 먹어도 아무것도 먹을 필요가 없는 약 같은 것도 개발되겠지만 아직 인류의 과학 기술이 그 정도까지는 발전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니까.


요즘 내 몸무게는 한참 저점을 찍었을 때에 비해 3킬로 정도가 늘었다. 그 선에서 무슨 백마강 고지 전투마냥 기분이 좋은 날은 한 1킬로 줄었다가 기분이 나쁜 날은 1킬로 정도가 늘곤 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운동량은 정해져 있는데 그에 비해 많이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떠나고 난 직후엔 도저히 아무것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프로틴 음료 서너 병으로 하루를 때운 적도 있었다. 평생 그렇게만 먹고살 수 있다면 운동 같은 건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러나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이고 망각의 동물이다. 나는 별로 오래되지도 않은 그 시간들의 '음식이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상태를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요즘은 숫제 오후 네다섯 시가 되면 아 이때쯤에 뭘 대충이라도 먹어야 또 새벽에 뜬금없이 배가 고파지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꽤 적극적으로 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가 떠나간 직후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동안 점심 한 끼 밥 먹는 것 외에는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두유 한 팩과 저녁 무렵 먹는 떠먹는 요거트 하나가 하루에 먹는 음식의 전부였던 시절이 1년 가까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몸무게가 최저점을 유지하지 못하고 야금야금 살이 도로 찌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래봤자'이긴 하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느슨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함께 지낼 때처럼 하루에 두 끼 밥을 배부르게 챙겨 먹고 그것도 모자라 저녁에는 냉동실이 미어터지게 쟁여놓은 빵을 간식으로 꺼내 먹고 그 외의 온갖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살던 그 시절로까지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은 결단코 내 식탐을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라 뭔가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예전만큼 즐겁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도 뭐, 최저점을 유지하는 데 애로가 있을 뿐 예전에 비해 앞자리가 두 번 바뀔 만큼 살이 빠진 것만은 사실이니 이만해도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왕 다이어트랍시고 시작했으면 남들 다 해본다는 '미용체중' 진입을 한 번은 해 봐야 할 텐데. 그러자면 예전처럼 먹던 것을 줄이던가 운동량을 더 늘리던가 둘 중 하나밖에는 답이 없는데 이것도 저것도 쉽지만은 않아 보이니 지금으로서는 전날 오후에 간식으로 뭘 먹었는가에 따라 다음날 아침 체중계의 눈감이 1킬로 범위 내를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면서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가 싶기도 하다. 세상엔 공짜가 없고, 살은 찌기는 쉬워도 빼기는 어려우며, 살을 빼기 위해서는 덜 먹던가 더 움직이던가 둘 중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기 때문에.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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