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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24. 2024

끝까지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210

그제 하루 종일 비가 오더니 어제는 반짝 날씨가 좀 누그러졌다. 일단 볕이 내려쬐지 않는 것만 해도 한결 낫다는 기분이었다. 구름 낀 하늘에 비까지 한 줄기 내려 습도도 많이 걷힌, 나름 나갔다 오기 적당한 날씨였다. 내주도 아마 내내 덥겠지, 싶은 생각에 나는 얼른 다음 주 중으로 사야 할 물건 몇 가지를 챙겨 보고 점심을 먹기 전에 후다닥 마트에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마트까지 가는 10분 남짓한 시간은 어딘가에 특별히 나갈 일이 없는 나의 거의 유일한 집 밖 출입이다. 그러나 이 마트 가는 길이 즐거운 기간은 슬프게도 그리 길지 않다. 여름엔 더워서, 겨울엔 추워서 언제나 곤욕이다. 그 와중에 커피라든가 우유 같은 무거운 물건을 몇 가지 고르고 나면 만만치 않은 무게의 장바구니를 들고 집까지 다시 걸어오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가끔 이것저것 몇 가지 담은 물건의 무게를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냥 억지로 배달 가능 금액을 채워 집까지 배달을 시키고 마트에서 사는 물건은 다 언제 써도 쓰고 언제 먹어도 먹는다는 자기 합리화를 열심히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럴 때 아쉬운 것이 자전거다. 몇 년 전부터 지자체 마크가 박힌 공공자전거가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저런 거 하나 있으면 참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한다. 집에서 마트까지 가는 길은 딱 자전거를 타고 갔다 오면 적당하게 운동도 되고 기분전환도 될 만한 거리이고, 그 와중에 더러 무거운 것들을 좀 사도 팔 아프게 끙끙거리며 들고 올 필요가 없으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일 텐데.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다. 내가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실이다.


나는 원래부터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고 그 와중에 겁도 많고 그 와중에 운동신경마저 빵점이라 이 나이를 먹도록 자전거를 못 탄다. 한 번은 바퀴 네 개 달린 차도 아니고 그깟 자전거쯤 못 탄다는 게 좀 자존심이 상해서 그에게 자전거 타는 걸 가르쳐달라고 해 본 적이 있다. 그는 꽤 끈기 있게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러나 가뜩이나 둔한 운동신경에 어려서부터 남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이는 게 딱 질색이었던 나는 그가 손만 놓았다 하면 옆으로 자빠지는 내 꼴을 도저히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이딴 거 안 한다며 내 풀에 먼저 팩팩대고 성질을 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해보자고 그는 나를 달랬지만 한 번 틀어진 내 마음은 풀리지 않았고, 결국 나는 그에게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물론 그때는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을 줄 알고서 그랬던 거지만.


겨울이야 또 길도 미끄럽고, 내 몸에 달린 내 발을 가지고 걸어가다가도 미끄러지는 일이 있는데 거기다 자전거를 탈 엄두까지는 낼 수 없을 것 같으니 그렇다 쳐도, 이제 다가올 여름에 자전거라도 탈 줄 알면 급하게 뭐 좀 사러 마트에 가야 할 일이 있을 때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또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그를 떠올린다. 제풀에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된 채 안 한다고 성질을 피우던 나를 난처한 얼굴로 바라보던 그 표정이 오늘따라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다. 조금 창피하더라도 끝까지 배울 걸 그랬다. 그랬으면 그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갈 때마다 당신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늘 후회는 이런 식으로, 한 박자 늦게 온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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