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Jul 21. 2024

혹시나는 대개 역시나다

-237

지난달 중순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는 일과 관련해서 '출입금지' 표지판 이미지가 급하게 필요하게 되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게는 구글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게 '돈이 걸린 일'이 아니라 이 브런치에 쓸 글 정도나 쓰는 일이었다면 정말 구글 선에서 별문제 없이 해결되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주처에 확인을 해 보니 담당자분은 그야말로 정색을 하고는 '정식으로 사용 허가가 있는 이미지를 사용하셔야 한다'고 두 번 세 번 주의를 주었다. 요즘 이쪽으로 되게 깐깐해졌다는 말과 함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그때였다. 그때부터 나는 '상업적 사용 가능이 가능한' 출입금지 표지판 이미지를 찾기 위해 한나절을 꼬박 구글을 뒤져야 했다. 세상엔 많은 이미지가 있지만 그걸 '돈 걸린 일'에 사용해도 된다고 풀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소비하고 나서, 나는 이래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쩔 수 없었다. 적당한 이미지를 컷으로 구매라도 할 수밖에.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요즘의 이미지 소스 사이트들은 대개 '구독'이라는 별로 반갑지 않은 컨셉의 월결제만을 허용하고 있었으며, 나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한 이미지 한두 컷만을 따로 구매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아예 준비해놓지도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내가 이미지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만지는 사람이라면 그런 월 결제도 해봄직하겠지만 내 본업은 어디까지나 글을 만지는 것이고, 그런 나에게 월 결제는 그지없이 쓸데없는 일로만 느껴졌다.


그러던 참에, '무료체험'이 가능한 사이트 한 군데를 발견했다. 회원 가입을 하고 '치험용 무료 플랜'을 신청하면 30일간은 결제를 하지 않아도 정해진 한도 내에서 사이트에 있는 이미지들을 다운 받아 정해진 라이센스에 맞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눈이 확 띄었다. 나는 몇 시간의 손품을 팔아 이런 대견한 사이트를 찾아낸 나 자신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퍼부으며 기꺼이 '무료플랜'에 가입하고 내게 필요했던 이미지를 찾아 무사히 잘 마감을 마쳤다.


여기까지만 듣고도 아마 많은 분들이 그 뒤에 일어날 일을 짐작하셨을 것이다. 느닷없이 시작된 비에 놀라 열어두었던 창문을 허둥지둥 닫고 한숨을 돌리던 나는 때아닌 카드 결제 문자에 이건 또 뭔 소린가 하고 대번 눈살부터 찌푸렸다가 한 달 전의 그 '무료플랜'을 기억해 내고는 아이고, 하는 소리를 냈다. 요컨대 나는 그 플랜을 제때 해지하는 것을 까먹어 버렸고, 그 결과 한 달이 무사히 도과해 기어이 월 결제가 나가버리고 만 것이다. 큰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뼈마디가 시큰거린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까웠다. 나는 한참이나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핸드폰 액정에 뜬 카드 결제 문자를 쏘아보고 쏘아보고 또 쏘아보았다. 그런다고 결제가 취소될 리도 없는데도.


그러니까 그날 무사히 마감을 마치고 그 플랜을 제깍 해지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놈의 '혹시나' 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혹시나 또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때는 다시 이 무료플랜을 이용하지 못할 것이고. 어차피 시간은 충분하니까 한 달 안에만 해지하면 되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놓아둔 플랜은 결국 이런 식으로 장렬하게 내 뒤통수를 때렸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뒤통수 좀 때려 달라고 알아서 갖다 내민 것에 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이트에서는 몇 번이나 친절하게, '청구일 전까지 무료 플랜을 해지하시면 추가 결제는 나가지 않는다'는 안내를 했고 그걸 다 읽었으면서도 어제까지 무료 플랜을 해지하지 않은 것은 나의 불찰인 게 맞았으므로. 나는 이를 갈며 사이트를 뒤져 방금 결제된 월 결제 플랜을 불문곡직 해지했다. 이왕 결제가 됐으니 사이트에서 받을 수 있는 이미지라도 몇 장 다운 받고 나서 해지할까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번에도 또 그 생각에 스스로 낚여 다음 달 이맘때도 이런 문자를 또 받게 된다면 정말 내가 한심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제발 캘린더 같은 데다 그런 거 체크 좀 해놓고 날짜 되기 전에 해지하라는 그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즘 친구들이 이런 걸 두고 '멍청비용'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던데, 참 적절한 네이밍 센스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한다. 혹시나는 대개 역시나고, 놔두면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하고 미뤄놓는 일들은 웬만해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꺼내 쓸만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진짜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 난 마음에는 장미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