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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24. 2024

다 된 걸까

-240

그게 그러니까 작년 12월 초의 일이었나 보다. 생전 그런 일이라곤 없던 내가 눈에 다래끼가 나서 병원에 갔던 게. 이 브런치는 대개 남루하고 구질구질하며, 뭐 이런 이야기까지 대놓고 쓰는가 하는 생각이 스스로도 들 정도로 구구절절하지만 가끔 이렇게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볼 때는 썩 훌륭한 타임캡슐 역할을 해낸다.


그때도 쓴 말이지만 나는 썩 튼튼한 편은 아니더라도 눈 관련한 일로 병원에 다녀본 적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거의'라 함은 내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도의 느낌이니 일단 내가 기억하는 한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안과라는 곳에 가 봤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지 고작 8개월 남짓만에, 나는 또 자고 일어난 아침 왼쪽 눈꺼풀이 어딘가 무지근한 것을 발견하고 인상을 썼다. 처음엔 잠결에 손등으로 눈자위라도 꾹 눌렀나 생각했지만 아침나절을 지나면서 오른쪽 눈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왼쪽 눈의 아랫눈꺼풀의 특정 부분이 꾹꾹 눌러보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고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왼쪽 아랫눈꺼풀 중간 부분에 아주 조그만 뾰루지 같은 것이 톡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또 다래끼가 난 것이다.


이놈의 몸뚱아리가 미쳤나, 하는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막말을 주워섬기며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아니 선생님. 제가 평생 가야 다래끼라는 거 안 나고 살았는데 작년 12월에 나고 지금 또 다래끼 나고 하는 건 도대체 왜 그런 거냐고, 내가 생각해도 참 답이 없는 질문을 했다. 그 난감한 질문에 의사는 웃으면서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다래끼라는 건 원래 굉장히 흔한 증상이고 안과에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그것 때문에 오시는 것이니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무난한 답을 해주었다.


술 드시지 마시고 기름진 것 드시지 마시고 틈틈이 온찜질하시고 점안액 잘 넣으시고 안연고 잘 바르시라는, 8개월 전에 들었던 것과 똑같은 주의사항을 듣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착하게 집에나 가려다가, 불쑥 며칠 오던 비가 오늘은 좀 잠잠한 핑계로 그 길로 버스를 타고 봉안당으로 갔다. 헌화대에 꽃 한 다발을 올려놓고는 나 다래끼 났는데 그게 벌써 두 번째고, 심지어는 난 지 8개월밖에 안 났는데 또 났다고, 당신도 알겠지만 나 생전 가야 다래끼 같은 건 안 났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나도 이제 다 된 걸까 하는 푸념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늘어놓았다.


거 참, 이제 50도 안 먹은 게 못하는 소리가 없네 하고 그가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고까짓 다래끼 두어 번 난 걸로 그게 할 소리냐고. 그러게. 고작 다래끼 두어 번 난 걸로 너무 급발진하는 것 같긴 한데 난 왜 이렇게 씁쓸하냐고.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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