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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26. 2024

벌써 올림픽

-242

갑작스레 그가 떠나버린 후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가 텔레비전이었다. 집이 조용한 건 견딜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텔레비전을 틀어놓자니 시끄러운 건 시끄러워서 싫고 조용한 건 조용해서 싫었으며 무엇보다도 실시간 방송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걸 강제로 알려주는 기분이어서 싫었다. 그래서 시청 중인 OTT를 이 잡듯이 뒤져서 시끄럽지도 않고 청승맞지도 않은 적당한 지나간 예능 프로그램들을 찾아서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를 딱히 보지도 않으면서도 하루종일 백색소음 비슷하게 틀어놓고 지냈었다.


그러던 나의 '방송 거부증'은 카타르 월드컵을 지나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그 이후로 갑작스레 입원을 하게 되면서 한번 더 제멋대로 뒤틀리고 말았다. 요즘은 그냥 괜히 시끄러운 게 싫어서 거의 텔레비전을 잘 켜지 않고, 점심을 준비하고 밥을 먹는 한두 시간 남짓만 적당히 틀어놓고 지내고 있다. 그나마 그 한두 시간 보는 프로그램조차 엄선해서 고른(?) 몇몇 예능프로그램 정도인지라 실시간 방송과는 여전히 담을 쌓고 지내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 지인분과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오늘부터 올림픽'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그러게, 그러고 보니 올해는 2024년이고 4로 나눠서 나머지 없이 딱 떨어지는 해에는 응당 올림픽을 여니까, 그리고 지금이 딱 올림픽 열릴 기간이긴 하니까 올림픽 한 번 할 때가 된 게 맞긴 할 텐데 내가 이렇게까지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살고 있나 싶어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난 도쿄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내 옆에는 같이 올림픽을 볼 사람이 있었는데. 지난 올림픽인 코로나 때문에 1년 연기되어서 열렸던 것 같다. 그때도 우리는 양궁을 보고 축구를 보고 펜싱을 보면서, 몇몇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에 분통을 터트리면서 열심히 '텔레비전 애국자' 노릇을 열심히 했었다.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기 전에 이런 식으로 영영 이별하게 될 줄을 모르고. 그 며칠 간의 일이 순간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져서 잠깐 멀미 비슷한 현기증이 났다. 그래서 속절없이 한 번 더 깨닫는다. 이제 정말로 혼자 남겨진 것을.


뭐 비단 올림픽뿐이겠나. 나는 이미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을 그 없이 혼자 보고 지나갔다. 이젠 올림픽의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는 많은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그 일들은 이제 모두 오롯이 혼자서 겪어내야만 한다. 눈에 난 다래끼도, 어쩌면 가야 할지도 모르는 이사도, 다음 달로 닥쳐온 온갖 머리 아픈 일들도. 덜컥 무서워지고 약간 씁쓸해졌고 조금 많이 착잡해졌다. 당신이 그렇게 떠났는데도 나는 아직도 이 끝나지 않은 시간 속을 혼자서 걸어가고 있구나. 그런 실감이 나서.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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