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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27. 2024

콩나물이 너무 많다

-243

워낙에 천성이 꼼꼼한 데다 약간의 결벽증까지 있는 편이어서 그는 정말 부엌살림을 잘했다. 특히 냉장고 관리는 아마 그만큼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하고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아쉬운 대로 그가 하던 것을 어깨너머로 본 대로 어설프게 따라 하고는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 부지런함이나 꼼꼼함에 있어서 그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어느 정도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고 있는 게 또한 사실이다.


그러던 그조차도 학을 떼는 식재료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부추, 하나는 숙주였다. 이 두 가지 다 그야말로 예민의 끝판왕들이라 웬만하면 한 번에 다 먹어 없애야 하며, 어설프게 남겨놨다가는 순식간에 상해버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나마 정말로 답이 없는 부추에 비해 숙주는 그가 온갖 곳을 다 뒤져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내긴 했다. 밀폐 용기에 숙주를 담고 물을 부어서, 일종의 수경재배 상태로 냉장실에 보관하는 것이다. 이 물을 하루에 한 번씩 갈아주면 그의 실험 데이터에 의하면 2주까지도 상태가 멀쩡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식재료들이 그렇듯이 숙주 같은 것도 그야말로 마트에서 '파는 대로 먹어야' 하기 십상이며. 그래서 한 번 먹기엔 양이 좀 많은 숙주를 사다가 두 번 정도에 나눠 먹으려다가 불상사가 생기게 마련인지라 그는 이 방법을 알아내고 나서 대단히 기뻐했다. 이 방법은 비슷한 종류인 콩나물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한 봉지에 2천 원도 채 안 하는 데다 대파 약간과 소금 정도만 있어도 두세 끼는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일 수 있는 고마운 식재료는 그리 흔하지 않아서 나도 종종 콩나물을 사다가 국을 끓인다. 다만, 그렇다. 밀폐 용기에 담아서 물을 부은 후에 하루에 한 번식 그 물만 갈아주면 된다는 지극히 쉽고 간단한 처치조차 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콩나물을 사면 그 한 봉지를 다 넣고 국을 끓인다. 그러노라면 나중엔 국물은 졸아들고 콩나물 건더기만 너무 많이 남아 숫제 콩나물을 건져다 밥에다 비벼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곤 하는 것이다. 잘 보존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조금 남겨뒀다가 매운 라면 끓여 먹을 때 한 줌씩 넣어서 꿇여 먹으면 매운맛 조절하는 데도 좋고 시원해지기까지 하니 일석이조일 텐데도 그 간단한 것조차 못해서 결국 한 봉지를 우격다짐으로 다 때려 넣은 콩나물국을 끓여서는 수북하게 건더기만 남은 콩나물을 우적우적 먹고 있는 꼴이 그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한다.


어제는 그렇게 끓인 콩나물국을 마지막으로 먹어 없애는 날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국을 뜰 때 작심하고 콩나물 건더기를 앞전부터 많이 먹어서 비교적 국물과 건더기의 밸런스가 좋게 마지막 콩나물국을 먹을 수 있었다. 아마도 내게는 하루에 한 번식 밀폐 용기의 물을 잊지 않고 갈아주는 것보다 무턱대고 끓인 콩나물국을 먹을 때마다 투덜거리는 편이 훨씬 쉽고 편한 모양이다. 참 딱하게도 그런 것 같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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