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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29. 2024

언젠가 끝나더라도

-245

하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효자종목 하면 역시 양궁을 빼놓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나 여자 양궁 단체전의 경우는 88년도 서울 올림픽 때 종목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가 금메달을 딴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라고 하는데 이 정도의 독식은 미국이나 중국 구 소련 같은 스포츠 강대국에서도 별로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종목의 위상과는 별개로 나는 양궁 중계를 잘 못 보는 편이다. 선수들을 못 믿어서도 아니고 금메달 못 따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 때문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 자리가 너무 무겁고 끔찍해서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의 1등 자리를 내 팀이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데 그 대단한 기록이 내 대에 와서 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그 자리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내게 설령 양궁을 아주 잘해서 올림픽 금메달보다 되게 어렵다는 국가대표 자리에 승선해 올림픽에 나갈 기회가 생긴다 해도 나는 그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해 그 자리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슬램덩크 극장판을 보면서 두 시간 내내 북산을 응원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 제 손으로 이어져 오던 모교의 우승 기록을 깨버린 정우성이 무너져 흐느끼는 장면에서는 좀 짠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뭐, 그런 건 나 같은 범인(凡人)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우리나라 여자 양궁은 어제도 금메달을 땄고, 올림픽 10연패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웠다. 매번 사람이 바뀌고, 지난 올림픽 때 그렇게 잘하던 선수가 이번 대표팀에는 엔트리에조차 들지 못하고, 심지어 그 아성에 도전하는 도전자의 라인업도 매번 바뀌는데도 그런 것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해내는 것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된다.


우리나라 여자 양궁의 이 연패 기록은 앉아있는 사람 위에 물풍선을 매달아 놓고 점점 크게 불어 가는 짓궂은 예능 프로그램의 벌칙 게임을 연상하게 하는 데가 있다. 연패 기록이 쌓일수록 그 기록을 짊어져야 하는 선수들의 중압감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언젠가 그 기록이 기어이 깨지고 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세상에 당연히 그런 것 따위는 정말 단 하나도 없으니까. 혹시나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하필 그 순간 그 자리에 서 있던 선수들에게 너무 큰 좌절과 슬픔이 없었으면 하는 다소 청승맞은 생각을 미리 했다. 뭔가의 슬픈 부분을 찾아서라도 괜히 한 번 생각해 보는 이런 버릇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가 떠나고 나서 생긴 버릇인 것 같다. 별로 좋은 버릇인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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