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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01. 2024

꿈꾸는 건 자유니까

-248

엊그저께였다. 오후 네 시쯤 되어 잠시 정신이 멍해지는 시간대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한 잔 가져온 커피도 이 무렵이면 대개 똑 떨어지고 하는 일은 슬슬 이골이 나서 슬금슬금 딴생각이 나기 시작하는 것은 대개 귀신같이 그 무렵이다.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대뜸 청약했느냐고 묻는다. 무슨 청약을 말하는 거냐는 반문에 시세 차익만 10억 본다는 '로또 청약'이 나온 것도 모르고 뭘 하고 사느냐고 대뜸 야단을 치시더니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 일단 넣어나 보라고 종용하셨다. 아니 그치만 나 지금 청약 통장도 없고 운운하는 말에 무순위 청약이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일단 넣어나 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뭘 어떡하면 된다는 건지 지인이 보내주신 설명 글의 링크를 봐 가며 청약 홈페이지를 열었다. 거기서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오류 메시지가 세 번인가 네 번이 뜨더니 가까스로 접속된 페이지에는 지근 내 앞에 93만 명쯤 되는 사람이 접속을 기다리고 있다는 기가 막힌 안내문구가 떴다. 내 접속 예상 시간은 오늘 오후 10시 몇 분쯤이라는 친절한 안내도 같이였다. 아니 이거 접속할 수 있긴 한 거냐고 지인에게 볼멘소리로 물었다. 되긴 되는데 한 한 시잔 정도는 버릴 거 각오해야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엔 심드렁했다. 이런 것도 뭐 타고난 복 있는 사람들이나 되는 거지 로또 매주 사도 5만 원 딱 세 번 당첨된 게 인생 최대의 업적인 나한테 시세 차익 10억은 무슨. 그러나 한 30분쯤 기다려서 생각보다 빨리 사이트가 열리자 심드렁하던 마음은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아마도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미친 듯한 오류가 뜨고, 그래서 처음으로 되돌아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그 과정이 모종의 승부욕을 건드린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숫제 하던 일을 잠시 미뤄놓고 본격적으로 청약 사이트에 매달렸다. 주소 한 번 쓰는 데, 공인인증서 한 번 넣는 데마다 수십 번의 에러 메시지가 떴다. 도대체가 이런 건수 하나 생기면 수백만 명이 달려들 거 오르지도 않을 거면서 서버 이따위로밖에 못해 놓나 하는 투덜거림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청약이 완료되었다는 확인 메시지를 보고 접수 내역까지를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5시 26분이었다. 사이트 접속 대기부터 치면 한 시간 반, 실제로 청약 과정에 든 시간만 따지만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 사투였다.


꿈꾸는 데는 세금이 들지 않으니 그 뒤로는 지인과의 망상에 가까운 대화가 이어졌다. 오늘 청약 나온 그 아파트는 입주 일자가 조금 지난 터러 이런저런 복잡한 조건도 걸려있지 않고 계약금 5천만 원만 구하면 된다는 말에 나는 5천만 원이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이냐며 웃었다. 시세 차익이 10억이라니까? 사채라도 써서 빌려와야지! 사채 하는 사람들도 그 아파트 당첨돼서 계약금 필요하다 그러면 두 말도 없이 빌려줄 거라는 말을 하며 우리는 한참 웃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청약 당첨이나 되고 난 후의 일들이겠지만.


그 청약이 시끄럽긴 무척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어제 포털 사이트에서 무려 경쟁률이 294만 분의 1이라는 기사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5만 분의 1인가 그렇다고 들은 것 같은데, 실제로 당첨자가 딱 한 명 나오진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실제로 로또 1등 당첨 확률보다 더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접속이 미어터진 것도 당연했고, 사채니 뭐니 하는 말 할 것도 없이 이런 게 당첨될 운이 있었으면 진작에 로또에 당첨됐겠구나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김이 샜다. 그래도 뭐 꿈꾸는 건 자유니, 내일 발표 때까지는 내게 시세 차익 10억짜리 로또 아파트가 생긴다면 뭘 어떻게 할 건가 하는 고민이나 즐겁게 해 봐야겠다. 33평형인 것 같던데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지 않을까. 역시 전세를 줘야 할까. 난 사실 지금 사는 집 정도가 딱 좋은데.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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