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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31. 2024

남의 시든 꽃

-247

여름 꽃은 빨리 시든다. 날이 덥고 습한 탓도 있을 테고, 그에 따라 가뜩이나 뿌리가 잘린 상태인 꽃들이 시드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마다 물을 갈아주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어줘도 여름 꽃의 수명은 일주일을 넘기기가 힘들다. 소국 같은, 안 그래도 오래가는 꽃들의 경우 겨울에는 한 달 가까이도 버티는 걸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건 집에 두는 꽃만 그런 게 아니라 봉안당에 두는 꽃들도 비슷하다.


봉안당에 가서 꽃을 올릴 때는 그냥 봉안당 내에서 판매하는 꽃을 사용한다. 차도 없는 처지에 거기까지 따로 꽃을 사서 들고 갈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다. 봉안당에서 파는 꽃은 조그마한 토분에 오아시스 폼을 꽂아서 그 위로 철에 따라 국화, 소국, 장미, 라넌큘러스 등의 꽃들을 조금씩 다르게 장식한 것들인데 아주 훌륭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그럭저럭 괜찮기 때문에 그의 봉안당 앞 헌화대에는 주로 이런 꽃들을 갖다 두고 있다. 그리고 봉안당의 꽃들도 계절을 탄다. 겨울에 두는 꽃은 근 한 달을 가도 조금 시들기만 할 뿐 곧잘 버티지만 여름에 두는 꽃은 일주일만 지나서 가 봐도 곰팡이가 슬거나 목이 꺾여 꽃잎이 다 말라 있다. 물론 직원분들이 아침마다 봉안당 내를 돌며 아주 많이 시든 꽃들은 수거하는 모양이지만 미처 눈길이 닿지 못하거나 상태가 애매하다거나 해서 헌화대에 볼품없이 시든 채로 남아있는 꽃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설이다.


그의 봉안당에 가서 그를 붙잡고 한참이나 뭐가 어떠니 저떠니 우는 소리를 늘어놓고,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절을 두 번 하고 그의 봉안당 주변에 계신 분들에게 최대한 깊이 허리를 숙여서 한 번씩 인사를 하고 온다. 저희 신랑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하는 의미에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앞뒤옆에 계시는 분들의 헌화대에 놓여있는 꽃들의 상태에 시선이 간다. 그중에 가끔 보기 딱할 만큼 시들어 있는 꽃이 있어서 저걸 좀 치워드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뭐라고 엄연히 가족이나 지인이 와서 돈 주고 사서 놓고 간 꽃에 함부로 손을 대겠나 하는 생각에 그냥 돌아서는 때가 많다.


오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의 옆자리쯤에 놓여있는 꽃 하나가, 흰 백합이 다 시들어 고개를 있는 대로 꺾고 있는 모양이 매우 딱해서 그냥 그의 헌화대에 지난주 놓아두었던 꽃을 치우는 김에 같이 치워드릴까 하고 몇 번이나 들먹들먹하다가 도저히 내키지가 않아 그냥 그의 것만 치우고 말았다. 제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가족분들이 사다 두신 꽃을 남인 제가 함부로 치우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간다고, 부디 무심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십사 하는 말을 그 앞을 지나가며 마음속으로나마 했다. 그러나 그렇게 못 본 체한 시든 꽃이 오늘 하루 내내 마음에 걸려서 아 내가 지접 치우기 뭣하면 직원 분에게 말해서라도 좀 치워달라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어제 내내 했다.


그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남의 일에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말라고 할 것 같기도 하고, 시든 거 치워주는 건데 뭐가 어떠냐고 말할 것 같기도 하다. 이래도 저래도 뾰족한 답이 없는 생각 끝에 늘 결론은 그렇게 난다. 누가 그의 헌화대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게, 나는 자주자주 가봐야겠다고. 이래서 또 핑계 하나 적립이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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