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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03. 2024

로또를 사는 이유

-250

매주 목요일이나 금요일쯤이 되면 딱 5천 원치만 로또를 산다. 가끔 사는 게 정신없는 날은 토요일까지 넘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낙첨이다. 5천 원이라도 되면 다음 주 로또를 생돈 들여 사지 않아도 되니 좋다는 정도고, 4등인 5만 원에 당첨돼 본 적이 세 번인가 있었는데 그 알량한 금액에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혼났다. 이래 가지고서야 설령 1등에 당첨된다 해도 심장마비 같은 게 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마 앰브로스 비어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복권은 수학을 못하는 사람에게서 떼는 세금'이라는 대단히 뼈 때리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 사실 그렇다. 815만 분의 1이라는 숫자는, 너무 커서 오히려 살감이 잘 나지 않는다. 조금 더 풀어써서 예수님이 태어나던 그 해부터 지금까지 매주 한 장씩 로또를 사도 맞을까 말까 한 확률이라는 정도가 되면 그제서야 조금 실감이 난다. 저런 택도 아닌 이벤트에 당첨된다는 건 그야말로 돌아가신 조상님이 꿈속에 나타나서 번호 여섯 개를 꼭꼭 찍어주고 가시는 정도의 운이 없이는 안 되는 일인 게 맞을 것이다. 가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한 회의 1등 당첨자가 60명씩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 운의 부스러기조차도 내 몫은 대개 아니었다.


처음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일주일 치의 공상을 위해 로또를 샀다. 1등이 되면 대충 수령액이 이것저것 다 떼고 10억 좀 넘는 정도라고 하니까, 어디에 얼마를 쓰고 어디에 얼마를 주고 뭘 사고 뭘 바꾸고 하는 식의 공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나이가 들 수록 인생은 뻔해져서 대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게 마련이다. 어제 일어나지 않은 일은 오늘도 일어나지 않고, 오늘 일어나지 않는 일은 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로또 1등 당첨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파격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르긴 해도 그가 갑작스레 떠난 이후부터가 아닐까 싶다. 요즘의 나는 '액땜'을 하기 위해 로또를 산다. 마치 어딘가에 내가 맡겨놓은 1등짜리 당첨 복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 로또 당첨 안 되는 대신 나쁜 일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사람의 평생에 존재하는 행운과 불행의 총량이 대개 일정하다는 말을 믿는다. 그래서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것으로 내 불운을 소비해 버리면 그곳으로 갈 불운이 다른 곳에는 오지 않을 거라는, 그런 미신 같은 믿음을 알게 모르게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 모로, 낙첨을 확인했을 때의 실망감도 적어서 좋다. 그냥 그만큼의 불운을 갖다 버린 값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되니까.


이번주는 로또를 살까 말까 하다가, 그냥 눈 딱 감고 한 장 샀다. 어제 발표가 있었던 예의 '로또 청약'에 당연한 이야기지만 떨어졌고 그걸로 다음 주의 불운은 다 당겨 쓴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그래도 늘 하던 가락이 있으니 다음 주의 불운은 두 배로 소비되라는 뜻에서 어제도 로또를 샀다. 로또 1등 같은 건 차마 되리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또 그런 갑작스런 행운이 없어도 어떻게든 살 수는 있으니 누군가가 또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내 곁을 떠나버리는 그런 일은 앞으로는 좀 없었으면 좋겠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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