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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05. 2024

이 나이에, 텔레비전

-252

이 브런치를 오래 봐 오신 분이라면 이 사람이 기본적으로 스포츠 경기는 좀 챙겨보는 사람이구나 하는 점을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타르 월드컵 이야기도 열심히 썼었고 야구나 축구 이야기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쓰는 편이고. 그런데 그랬던 나는 올해 열린 유로 2024도 그냥 지나갔고 파리 올림픽 이야기도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대로 나는 어딘가에 시간을 맞춰 출근하는 사람도 아니고 하루에 일정 시간 이상을 회사에 매여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보고자 하면 시간대 상관없이 중계방송 같은 건 못 볼 이유가 딱히 없는데도, 유로 2024도 그렇고 이번 파리 올림픽도 그렇고 챙겨볼 의욕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 이건 비단 스포츠 중계뿐만이 아니라 방송 전반에 관한 내 태도가 다 그렇다. 이 증세는 정확히, 작년에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집을 몇 달 비웠다가 돌아온 그 이후부터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텔레비전을 굳이 보고 싶지가 않다. 그가 급작스레 떠난 이후 한동안도 비슷한 증세가 있었지만 그땐 집안이 조용한 걸 견디지 못해 하루 종일 뭐라도 틀어놓고 있었고 그나마도 작년 여름쯤에는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던 참이기는 했는데, 그 입원 이후로 다시 좀 더 악화된 듯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실제로 밥을 먹는 한두 시간 정도나 찔끔, 그나마도 실시간 방송도 아닌 vod를 적당히 틀어놓을 뿐이다.


텔레비전을 딱히 보고 싶지 않다는 것 자체는 사실 그리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더러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서는 일부러 텔레비전을 없애기도 한다고 들었으니까(물론 그래봤자 요즘은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너무나 쉽게 방송과 방송을 대체할 매체들을 접할 수 있으니 그런 조치가 효과가 있긴 하려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그러니 이제 다 크다 못해 좀 있으면 '꺾인 백 살'이 되는 내가 이제 와서 텔레비전 볼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는 뭐, 어느 날 갑자기 그간 잘 사다 먹던 두유에 물렸다든가 요즘 들어 특정 색깔의 옷을 별로 입고 싶지 않아졌다든가 하는 정도에 불과한 변화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내가 점점 고립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간혹 들어서다. 몇 년째 쓰고 있는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의 최신 차트에 올라오는 곡 중에 아는 노래가 단 한 곡도 없게 된 것은 이미 2년도 넘었다. 나는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가 무엇인지, 어떤 말이 유행하는지,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이나 배우가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물론 그런 걸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고, 상당 부분은 생업을 위해 접속하는 인터넷의 포탈 사이트가 메꾸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그런 식으로, 토막토막 기워 붙여서 아는 것과 그 흐름을 알고 주욱 따라가며 알게 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말이다. 이런 식으로 고립되어 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끔 좀 뜨끔해질 때가 있다. 사실 이번 올림픽은 그런 고립감을 깨뜨릴 나름 절호의 찬스이기도 했는데 내가 영 받아먹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이젠 어딜 가나 아줌마, 여사님, 어머님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낡은'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요즘의 나는 나 스스로가 점점 굴을 파고 들어가 골방에 숨는 느낌이어서 슬그머니 걱정되기도 한다. 이렇게 혼자 동그마니 떨어진 외딴섬처럼 살아가는 건 그도 딱히 바라는 바가 아닐 텐데. 이젠 하다 못해 하루에 얼마씩 시간을 정해놓고 억지로 뉴스라도 봐야 할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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