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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12. 2024

재부팅 버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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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컴퓨터를 쓸 때 버티컬 무선 마우스를 쓴다. 원래는 아주 평범한 일반 유선 마우스를 썼으나 글 쓰는 사람이 손목 생각을 해야 하고 무선 마우스 한 번 맛 들이면 유선은 불편해서 못 쓸 거라는 말을 하며 그가 강매하듯 안겨준 물건이 의외로 편해서 그 이후로는 쭉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편리하다는 것은 때로는 여러 가지 자잘한 고장을 많이 일으킨다는 말과 어느 정도 동의어이기도 하다. 무선 마우스는, 유선 마우스를 쓸 때는 한 번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갖가지 방법으로 소소하게 나를 애먹인다. 잊을만하면 안에 넣는 건전지가 다 되어 마우스가 먹통이 되는 것은 아주 고전적인 케이스라 할 만하다. 가끔 스크롤이 잘 내려가지 않거나 한 번 클릭을 했는데 제멋대로 더블 클릭으로 인식한다거나 하는 소소한 에러가 발생할 때가 있다. 그러면 그냥 한숨 한 번 내쉬고 마우스의 무선 연결기를 한 번 뺐다 꽂는다거나 마우스 자체 전원 스위치를 한 번 내렸다 켠다. 그러면 어지간한 에러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다만 어제는 좀 심각한 수준의 에러가 있었다. 휠을 아래로 굴리면 제멋대로 보고 있던 브라우저의 페이지가 스크롤된 만큼 이전 페이지로 되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클릭이 먹지 않는다거나 한 번에 스크롤되는 문자열의 행 수가 내가 세팅한 값과 다르다거나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수준의 문제여서 나는 '하필이면 일요일 오후에 이런 식으로 사람을 골탕 먹이는' 마우스에 대해 한참을 투덜거리며 열심히 인터넷으로 관련 증상을 검색해 보았다. 대번 뜨는 글들이 무려 '마우스를 분해해서 기판을 청소하는' 것들이어서 나는 대번 기가 질리고 말았다. 내 경험상 뭔가를 분해해서 그 속의 부품을 갈거나 청소하거나 하는 작업은, 대개의 글에 적혀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런 글들은 이를테면, '참 쉽죠?'라는 멘트로 유명한 한 화가의 TV 프로그램 같은 것이라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도와 그에 필요한 장비를 다 갖춘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니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차선으로 올라와 있는 것들이 버튼과 버튼 사이를 청소해 보라든가 심지어는 바닥 부분을 몇 번 내리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다소 과격한 처방도 있었다. 뜯는 것을 제외하고 그런 것들을 돌아가며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 결국 이래서, 또 마우스도 돈 주고 사야 하나. 뭐 그것까지도 좋은데, 그럼 그 마우스 배송 올 때까진 어떡해야 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지그시 머리가 아팠다.


컴퓨터가 부리는 말썽의 대부분은 '재부팅'으로 고쳐진다. 그래서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제멋대로 튀는 마우스의 포트를 살살 달래 가며 재부팅을 눌렀다. 컴퓨터가 잠시 꺼졌다 다시 켜지는 동안 나는 정 안 되면 그의 pc에 물려둔 마우스라도 임시로 며칠 써야 할까를 고민했다. 그냥 내일 가까운 컴퓨터 수리점에 가서 마우스를 하나 사 올까. 그런 데서 사면 비쌀 텐데. 뭐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컴퓨터가 다시 켜졌다. 별 기대 없이 마우스를 움직여 보았더니 애를 먹이던 마우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잘 움직였다. 아무리 스크롤을 해도 제멋대로 이전 페이지로 넘어가는 일도 없었다. 일단 마우스값이 굳었고 마우스가 배송돼 오는 동안 그의 마우스를 뽑아다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사람에게도 이렇게, 누르면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그런 버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지간한 에러는 알아서 잡히고, 모자라던 리소스와 메모리도 보충되고, 불안정하던 인터넷 연결도 정상화되는 그런 마법 같은 버튼이. 그런 게 가능하다면 인생이 조금은 쉬울 텐데.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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