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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09. 2024

욕본다

-256

이 브런치에 올린 700편이 넘는 글들 가운데 가장 조회수가 높은 글은 얼마 전에 썼던 커피에 찍어먹는 크래커에 관한 글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이 어제, 며칠 전 쓴 에어컨 온도에 관한 글로 무려 5만 회 이상의 조회수 차이를 내며 갱신되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에어컨 온도에 관한 글을 쓴 건 아무래도 본의 아닌 낚시질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 모양이다. 제목을 그렇게 달지 말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내내 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에어컨의 적정 실내 온도나 전기료 좀 덜 나오게 하는 법 등의 매우 실용적인 주제에 관심이 있으셨을 많은 분들이 이 본의 아닌 낚시에 이 벽진 브런치까지 오셔서, 그냥 청승 떠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글을 읽고 나가셨다. 그리고 그중에 적지 않은 분들이 이 브런치는 도대체 뭐하는 곳인가 하는 생각에 과거에 내가 올린 글들을 몇 편 읽어보신 모양이다. 아마도 그 글에 언급되는 '그'가 누구며, 언제 어디로 어떻게 떠났다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약간은 있지 않으셨으려나 싶다. 그래서 며칠간 내 핸드폰 알림은 아주 오래전, 이 브런치를 열고 초창기에 썼던 글들에 대한 라이킷이나 댓글 알림으로 내내 소란했다.


2년 간 700편이 넘는 글을 써댔다 보니 그중에는 이런 제목의 글도 있었던가 하는 글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알람을 눌러 들어가, 1년 전 혹은 2년 전의 내가 남겨놓은 흔적을 되짚어본다. 그가 떠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에 적혀진 글들에는 잠깐 나도 모르게 스크롤을 멈출 만큼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기도 했고 가끔은 문장의 행간에 더러 말할 수 없는 귀기가 서려 있기도 했다. 어느 글이든, 길든 짧든 그 내용이 무엇이든 녹록한 글이 없었다. 내가 참, 이 시간을 무사히 죽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조금은 지난날의 내가 대견해졌다.


내가 사는 건 여전히 엉망이고 '정상화'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상화라는 게 무엇인지. 이제 내 삶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내 곁에 존재하던 시절과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거라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방향으로, 그나마 좀 더 정갈하고 차분하게 나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방향으로 그렇게 바뀌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면 625 전쟁 때 피난 온 분들이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산등성이에 그대로 정착해 버린 달동네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요즘은 감천문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꽤 명소가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러나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셨을 그분들처럼 내 삶도 그런 식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고향의 말로, 고생한다 혹은 수고한다는 말을 '욕본다'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나 자신에게 그 말을 좀 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욕봤고, 욕보고 있고, 근데 앞으로도 좀 더 욕봐야 될 것 같다고. 살아야 할 날이 얼마나 더 남아있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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