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남짓, 나는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다. 옛날 조선 시대에 남편이 죽고 삼년상이라도 치르고 있는 과부처럼 살고 있진 않다. 나는 이만하면 잘 먹고 잘 자고 있으며 소리를 내어 웃기도 하고 소소한 작은 일에 기뻐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지금의 내 모습은 다른 사람까지 갈 것도 없이 내 예상부터를 빗나가는 것이어서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다. 나는 그가 이런 식으로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리면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할 줄로 알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떠난 사람이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꽤나 배신감 비슷한 걸 느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인 것은, 나의 기본적인 상태가 우울함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정상과 우울함의 경계선 위에 몹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상태이며, 누군가가 옆에서 훅 불기만 해도 언제든 우울해지고 슬퍼질 수 있는 그런 상태에 있다. 나의 하루는 대개 그 우울함으로 끌려들어 가지 않으려는 발버둥으로 가득 차 있으며 내가 억지로 만든 루틴의 대부분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그중 한 가지가 그의 책상에 꽃을 사다 꽂아놓고, 매일 꽃병에 물을 갈고 꽃대를 잘라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집 안에 꽃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나는 이미 몇 번 실감한 적이 있었다. 꽃병에 꽂힌 그 한 줌의 꽃은 생각보다 많은 위로와 휴식을 준다. 그래서인지 새 꽃을 사서 꽃병에 꽂아 그의 책상에 갖다 놓고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이고 꽃말은 무엇이고를 마치 보고하듯 주절거리는 그 순간의 기쁨만큼이나 그 꽃이 시들어 결국은 내 손으로 잘라서 버릴 때의 안타까움과 섭섭함도 크다.
두 번 정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한 번은 자주색 소국을 사다 꽂아놓았을 때였다. 꽃잎이 바깥에서부터 말라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이 소국을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을까 싶어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절화의 경우 꽃대가 막혀서 물올림이 좋지 못해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그럴 때는 뜨거운 물을 약간만 담아서 거기다 꽃대 끝을 잘라 막힌 것을 뚫어주면 꽃이 다시 싱싱해진다는 말이 있었다. 이거다 싶어서 당장 그렇게 해 보았다. 그러나 한 번 시들기 시작한 소국은 다시 살아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그 다다음 날 때쯤 새 꽃을 사다 꽂았다.
두 번째는 바로 어젯밤이었다. 이번 주 월요일, 상담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언제나처럼 화원에 들러 이번 주에는 또 무슨 꽃을 사다 꽂을까를 고민했다. 그때 내 눈에 마치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하게 부풀어 오른 연하늘색 수국이 들어왔다. 아, 예쁘다. 그날의 꽃구경은 그냥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수국 한 송이―그러니까 그 몽글몽글한 꽃들이 전부 하나의 꽃대에서 나온 거였다―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꽃대와 잎을 다듬어 꽃병에 꽂아 두었다. 며칠간 방안을 드나들며 그 수국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었다.
그러나 수국은 사온 그다음 날부터 조금씩 시들기 시작하더니 어젯밤쯤에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꽃잎이 말려들어가고 축 처지기 시작했다. 수국은 물을 좋아해서 시들기 시작할 때 통째로 물속에 담가 두면 놀랄 만큼 생생해진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니 과연 그런 글들이 있었다. 나는 욕실 세면대에 물을 가득 담아 그 속에 수국을 몇 시간 담가 놓았다가 다시 꺼냈다. 물을 먹어 무거워진 꽃송이들을 조심스레 털어내고 다시 꽃병에 꽂은 후, 제발 수국이 쾌차(?)하기를 진심으로 빎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수국은 살아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 본 수국은 그냥 시든 채 물에만 잔뜩 젖은, 어젯밤 본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더없이 참담한 기분으로 시들어버린 수국을 잘라 쓰레기통에 버렸다.
뭐든 할 수 있을 때, 여지가 남아 있을 때 해야 한다. 시들어버린 후엔, 이미 지나가버린 후엔 무슨 짓을 해도 돌이킬 수 없다. 이 사실을, 좀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직 그 사람이 떠나기 전에. 내 옆에 있을 때. 뭐든 하나라도 더 해줄 수 있었을 때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