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러지 말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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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만 원 남짓 하는 생활용품을 인터넷으로 사는 것은 내 나름의 기분 푸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나는 아직도 십만 원 이상 넘어가는 비싼 물건이나 옷이나 화장품 등 실제로 만져보고 향을 맡아봐야 하는 물건은 웬만해서는 인터넷으로 사지 않는다. 책의 경우도 서점에 가서 직접 책장을 열어보는 '손맛'을 볼 수 없어서 어지간하면 인터넷으로 사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내 인터넷 쇼핑 목록은 대개 1, 2만 원 선의, 그게 어떤 물건인지 내가 이미 몇 번 사서 써 본 뻔히 아는 품목들에서 그친다. 그런 것을 몇 개 주문해놓고 택배를 기다리는 것은, 요즘 같은 우울한 시기에는 꽤 쏠쏠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제 아침, 나는 알 수 없는 택배 하나를 받았다.


받는 사람은 내가 맞았고 적혀 있는 연락처도 내 전화번호가 맞았지만 발신인은 내가 이름을 아는 몰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도 주문해 놓고 잊어버린 물건은 없는데 싶어 한참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나 같은 사람한테 누가 사제 폭탄 같은 걸 보내지는 않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나는 일단 택배 박스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서는 정작 커피보다도 파는 MD로 더 유명한 한 프랜차이즈 카페의 텀블러가 하나 나왔다. 대충만 봐도 한 500ml 정도는 들어갈 것 같은 아주 큼직한 녀석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일까를 한참 고민하던 나는 뒤늦게 아,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요즘 그가 떠나고 난 후 집안의 적막도 견딜 수 없고 실시간 방송도 도저히 볼 수가 없어 한 예능 방송의 정액제를 끊어놓고 그 속에서 살고 있다. 그건 아마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걸 거부하는 내 무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저 혼자 끊임없이 떠들어대던 텔레비전의 한 구석에서 정액제에 가입한 분들 중 몇 분을 추첨해 텀블러를 드린다는 이벤트 배너를 봤었고 호기심에 눌러보았던 것이 그제야 기억났다. 이거 혹시 그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뒤져보니 읽지도 않고 한꺼번에 읽음 표시를 해 버린 많은 문자 메시지 중 당첨 확인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텀블러를 책상 위 그의 사진 액자 앞에 놓았다. 이야 세상에. 나 이런 거 하면 5천 원짜리 문화상품권 하나도 안 되는 사람인데 이런 거 받는 일이 다 있네. 오빠가 사주는 거구나. 두 개씩 짝 맞는 컵들 꺼내면서 심란해하지 말고 여기다 그냥 커피 마시고 하라고. 말끝에 울컥 눈물이 났다. 사주려면 좀 이쁜 걸 사주지. 참 재미없게도 생긴 걸 사준다. 이런 거 오빠 취향 아니잖아. 큼직한 거 하나는 참 마음에 든다만.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러지 말지. 그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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