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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16. 2024

두부가 없어도

-263

늘 물건을 주문하는 마트에서 이것저것을 주문해도 어지간하면 직접 집 근처 마트에 걸어가서 사는 물품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고기다. 집에서 걸어서 10분쯤 떨어져 있는 마트는 지역 축산 농협과 연계되어 있어서 좋은 국산 고기를 상당히 싼 가격에 판다. 요즘 같은 날씨에 고기 몇백 그램 사자고 10분이나 걸어가는 것도 여사 일은 아니어서 눈  감고 그냥 마트에서 같이 주문하자고 마음먹어 보아도 막상 가격 차이를 보면 도저히 그렇게는 되지 않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기는 따로 사곤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이번에는 그래도 마침 마트 근처에 큰 짐을 들고 갈 일이 있어서 그 핑계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스를 타고 편하게 마트까지 갔다. 볼 일을 다 보고 마트에 들러서 쓸데없는 돈을 쓰지 않으려고 마치 눈 옆이 막힌 경주마처럼 정육 코너 하나만을 보고 돌진해 돼지고기 앞다리살 300 그램이 포장된 팩 하나를 집어 들고는 계산을 하고 총총히 마트를 나왔다. 그리고 오늘 그 사온 고기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양파와 감자, 표고버섯에 사 온 돼지고기까지 넣고 푹푹 끓인 된장찌개는 오늘따라 되직하게 제법 잘 끓여져서 이 더운 날 가스레인지 앞을 서성거린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다 끓인 된장찌개를 그릇에 덜어 밥과 함께 한 술 뜨려던 순간, 나는 아 하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찌개에는 두부가 없었다. 이건 고기 사는 것에만 신경을 쓰느라 두부 사 오는 걸 깜빡했다는 그런 레벨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만하게 끓여놓고 한 두세 끼 먹을 국이든 찌개든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번엔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두부라는 식재료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뭐 두부를 그리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있으면 가려내지 않고 먹는다는 정도지 그게 없다고 찌개를 안 먹는다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 모르긴 해도 내가 두부를 엄청나게 좋아했다면 찌개를 끓이련다면서 고기만 사고 두부는 안 사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테지. 그래도 두부가 들어가지 않은 이 찌개를 과연 된장찌개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그냥 좀 되직하게 끓인 된장국 정도로 봐야 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에 나는 잠시 심란해졌다. 아마 간만에 찌개의 농도가 묽지 않게 잘 끓여져서 그 옥의 티가 더 눈에 밟힌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 혼자 먹을 찌개에, 다 끓여서 그릇에 뜨기까지 해 놓고 이제 와서 두부를 새로 사 와서 넣는 까탈 같은 건 부릴 엄두도 안 났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묵묵히, 그 두부 빠진 된장찌개로 점심 한 끼를 먹었다.


몇 끼쯤 두부 빠진 된장찌개를 먹는다고 뭐가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이젠 연식이 제법 된 어느 오래된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문구대로 로브가 없어도 마법사는 마법사고 검이 없어도 기사는 기사이며 표지가 뜯겨져 나가도 책은 책이랬으니 두부가 없어도 찌개는 찌개다. 아마도 그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마트에 주문을 하고 고기를 사러 따로 다녀오기까지 했으면서도 그까짓 두부 한 모 사 오지 못한 것에 대해 한심함 1포인트 적립인 건 둘째 치고.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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