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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살고 있는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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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한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덕분에 요즘 그나마 몇 가지 챙겨보던 프로그램의 vod가 많이 밀렸다. 덕분에 요 근래 얼마간은 점심 준비를 하거나 불쑥 집안이 조용한 것이 싫어져서 뭔가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싶어질 때 한참이나 여기저기를 뒤지지 않고 바로 보고 있던 vod의 다음 편을 누르면 되어서 좋기는 하다.


그렇게 무심하게 보고 있던 vod에 빵 이야기가 나왔다. 주변 지인 중에 '빵 덕후'가 있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빵은 꼭 사다 먹어보고 개중 맛있는 것은 사 와서 나눠주기도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화면에 그 지인이 사다 줬다는 몇 가지 빵이 등장했다. 겉으로 보기엔 돌멩이와 똑같이 생긴 돌빵도 있었고 전복이 들어있다는 전복빵도 있었고 짬뽕이 들어있다는 짬뽕빵도 있었다. 나 또한 빵순이였고 한 때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은 거의 다 섭렵했었지만 그런 나조차 이름도 처음 듣는 빵들이어서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이나 화면을 지켜보았다.


'저녁에 먹을 빵'을 사다 놓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였다. 어디서 어떤 빵을 얼마만큼 사 와서 어떻게 보관해 놓고 먹느냐 하는 점에 이르기까지 전부 그랬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몸이 나빠져 장거리 운전을 하기 힘들어진 이후로 그는 자주자주 인터넷을 뒤져서 '택배로 주문이 가능한 유명하고 맛있는 빵들'의 리스트를 따로 만들었다. 검색까지나 해 보진 않았지만 방송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빵들이라면 분명 나름의 택배 판매 루트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고, 그는 아마도 방송의 본 내용은 아랑곳없이 곁다리로 나왔던 그 빵들을 검색해 보고 택배가 되는지 인 되는지, 최소 주문 수량은 몇 개인지, 며칠 놔뒀다 먹으려면 어떤 식으로 보관하면 되는지 하는 것들을 열심히 검색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늦어도 다음 주쯤에는, 그의 그런 부지런함 덕분에 나는 그 방송에 나온 빵들을 먹어보고 과연 방송을 탈 만한 빵인지 아니면 거품인지 하는 주제를 놓고 그와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빵을 사지 않는다. 아주 사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그야말로 서너 달에 한 번 그나마도 지나는 길의 동선에 그럴싸한 베이커리가 있을 때 들어가 몇 가지를 골라 나오는 선에서 그친다. 사는 메뉴 또한 정해져 있다. 요즘 대부분의 베이커리에서 취급하는 소금빵 두어 개, 내 최애빵이라 할 수 있는 슈크림빵 두어 개, 경우에 따라 파운드나 슬라이스한 롤 정도를 겨우 살뿐이다. 예전에 그와 함께 빵을 사러 갈 때는 일단 매장 우석구석을 한 바퀴 돌며 이 집엔 어떤 빵이 있고 그 빵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에만 10분 이상을 소비했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그럴 필요도 기력도 남아있지 않아서, 그저 알만한 빵 몇 가지를 적당히 골라 계산하고 나오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그 방송에 나온 빵도 그렇다. 내가 과연 그 방송에 나온 빵을 택배씩이나 받아가며 먹어볼 일이 있을까. 별로 그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당장 냉동실 안에는 얼마 전 무료로 생긴 쿠폰을 써서 받아온 우유식빵 중에 프렌치토스트를 해먹은 세 개를 뺀 나머지 식빵들이 잠자고 있다. 그걸 언제나 꺼내서 또 프렌치토스트씩이나 할 엄두가 날지 그것조차 잘 모르겠다.


그가 떠난 후로 내가 막 그렇게까지 피폐하게 살고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만하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면서, 그렇게 잘 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내 곁에 있을 때에 비해 내 생활은 확실히 단조로워지긴 했다. 그것까지는 차마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unnamed.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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