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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하나 달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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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어제는 익히 예상은 했지만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 와중에 새벽녘부터는 때아닌 태풍으로 요란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같이 내렸고, 그 덕분에 두 번인지 잠을 깨 본의 아닌 토막잠을 잤다. 비는 오후 제법 늦은 시간까지도 계속 추적추적 왔고, 나는 더위와 눅눅함을 온몸에 휘감은 채 하루종일 사방팔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는 데 한눈을 팔다가 버스를 놓쳐서 정류장에서만 30분을 추가로 더 쓰기도 했다.


꽃이 배송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는 정확히 오후 한 시에 왔고 그때부터는 괜히 더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느라 다는 오후 세 시까지 밥은커녕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예전엔 점심 한 끼 늦어진다고 이렇게 역반응이 오진 않았던 것 같은데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파서, 그 와중에 밖에서 적당히 밥을 먹고 네 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창문을 꼭꼭 닫아둔 덕분에 집안은 한증막 같았다.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하고 손만 씻고는 현관 앞에 부려져 있던 꽃들부터 다듬어서 꽃병에 꽂았다. 그래서 내가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렸을 때는 오후 다섯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30퍼센트 아래로 충전율이 내려간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으려다가 상단에 쌓여있는 온갖 알림들을 쓱쓱 읽어가며 지웠다. 그중에는 브런치에서 온 이런저런 알림들도 있었다. 그 속에 흔하지 않은 댓글 알림이 있었다. 혹시나 또 뭔가 글을 쓰다가 생각지도 못한 실수나 한 건 아닌가 싶어 바싹 신경이 곤두섰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댓글의 내용을 확인했더니 영문을 알 수 없는 문자열로 가득한 댓글 한 줄이 남겨져 있었다. 이게 뭘까.


아. 그리고 그 댓글을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이거 아마도, 아기가 엄마의 핸드폰을 이리저리 눌러보다가 실수로 달린 거거나 고양이가 집사 분의 핸드폰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달린 거구나 하는 영문 모를 생각이 떠올랐고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다른 모든 가능성은 일시에 소거되고 그 사실 하나만이 내 안의 진실로 그렇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 영문 모를 댓글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여서 나는 한참을 웃었다. 물론 실제는 그것과 다를 수도 충분히 있다. 요즘 같은 덥고 습한 날 옷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여기저기 쓸리면서 오작동을 일으킨 것일지도 모르고. 그러나 이랬든 저랬든, 댓글의 주인분이 그렇다고 공식적인 '해명'을 하시지 않는 이상 나는 그 댓글을 어느 얼굴 모를 아기나 고양이가 달아준 것으로, 그렇게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아마도 어제 하루, 온갖 것들과 싸우며 오후 세 시가 넘도록 밥 한 술 뜨지 못하고 악전고투한 나를 위해 그가 따로 부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 아줌마가 오늘 굉장히 힘든 하루였으니 네가 댓글 하나 달아주렴, 이라고. 그냥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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