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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방송이라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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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요즘은 너무나 당연하다 못해 진부해져 사용하지 않는 표현 중에 인터넷을 지칭하는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인터넷은 생활 전반에 너무나 깊히 침투해 버려 그걸 따로 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의식을 하고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가 맞고, 그래서 그 넓고 광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출렁거리던 누군가가 보낸 병 속에 든 편지가 뜻 없이 백사장을 걷고 있던 내 발치에 마법처럼 와서 닿는 일도 가끔은 일어나는 것 같다.


오늘 내가 인터넷을 떠돌다가 발견한 '병 속에 든 편지'는 마거릿 맥컬럼이라는 이름의 한 영국의 공중보건의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모로코에 여행을 갔다가 남편을 만났고 영국으로 돌아와 11년을 동거한 끝에 결혼했고 4년 후 사별했다. 사별한 남편은 런던 지하철에서 근무했고, 임뱅크먼트 역 승강장에서는 지하철이 도착할 때마다 '간격이 넓으니 조심하세요'라는 남편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그 목소리를 들으러 기하철 역으로 갔다. 가끔은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지하철을 몇 대나 그냥 보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의 목소리로 된 안내방송은 2012년 사라졌다. 지하철 역사 안내방송이 디지털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사연을 설명하고 남편의 목소리를 계속 듣게 해 달라는 편지를 썼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달쯤 후, 그녀의 사연을 알게 된 교통국 책임자가 디지털 코드를 수정해 다시 남편의 안내방송을 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세상을 떠난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러 다시 그 지하철 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잘 짜여진 단편소설 같은 실화였다.


가끔 생각한다. 핸드폰이 아니라 삐삐를 쓰던 시절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그랬으면 음성 사서함에 그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은 남아있지 않았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어디 녹음되는 노래방이라도 가서 실컷 노래라도 부르고 올 걸 하는 후회를 나는 한동안 아주 많이 했었다. 정해진 문장 몇 개를 읽으면 거기서 음성을 추출해 AI 보이스를 만들어준다는 어느 통신사의 광고를 보고는 왜 저런 건 이렇게 늦게나 상용화되는 것일까 하는 원망을 혼자 삼키기도 했다. 사람은 목소리부터 잊혀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발작하듯 그의 목소리를 떠올려보고, 내가 아직 그의 목소리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나쁜 사람. 그렇게 가 버릴 거면 지하철 공사에 취직이라도 해서, 역사 안내방송 같은 거라도 좀 해놓던지. 그 기사를 다 읽고 먹먹해진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2020년에 작성된 기사의 마무리는 그 해로 만 72세가 된 맥컬럼 역시도 이미 몇 년째 더는 지하철역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녀의 기다림은 어떤 식으로든 끝을 맺은 모양이다. 나의 기다림의 끝은 언제, 어떤 식으로 올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의 글은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님의 2020년 12월 11일 자 기사 '런던 지하철 임뱅크먼트 역의 사랑'에서 전반적인 내용과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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