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평일 일과 시간에 자리를 비운다는 건 어딘가 뒤통수가 찌릿하다. 그래서 마트에 간다거나 하는 일은 어지간하면 주말을 이용하게 된다. 특히나 요즘처럼, 통상적으로 외출하는 시간의 날씨가 너무 더울 때는 더 그렇다. 해가 지고 조금이라도 기온이 식고 난 후의 시간은 아무래도 시간이 늦어져서 물건이 빠져버린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왕 한 번 움직일 것, 다음 주에 두 번 세 번 걸음을 하지 않도록 나 치고는 꽤 꼼꼼하게 사 올 것들의 리스트를 챙겨서 열 시 반쯤 집을 나섰다. 처서를 지나면서 날이 많이는 아니나마 조금 한풀 꺾였고, 어제는 구름도 약간 끼어서 볕도 그렇게 세게는 나지 않으니 그래도 천천히 집에서 10분 거리인 마트까지 한 번 걸어갔다 와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웬걸. '그래도 한 풀 꺾였다'는 건 시원한 집 안에서 창문으로 바깥이나 내다볼 때의 감상에 불과했다. 집 밖으로 한발 나서는 순간부터 한증막에 들어선 듯한 후끈한 열기에 숨이 막혔다. 나는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몇 발 걷기도 전에 제풀에 질려 그냥 얌전히 버스를 타기로 하고, 걸어가는 길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너와 헤어지고 나서 노래가 늘었다'는 노래 가사도 있는데 내 경우엔 노래가 는 게 아니라 엄살이 늘었다. 예전엔 어지간하면 걷고, 해 보고, 참았다.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던 거리가 걸어가 보니 생각보다 멀었고, 대충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던 일이 막상 해 보니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았고, 그냥 이대로 있어도 좀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으니 그냥 이불 둘러쓰고 잠이나 한숨 자는 것으로 대충 참았다. 그러나 이제는 잘 못 그러고, 다소 엄살스럽게 호들갑스럽게 살고 있다. 조금만 멀다 싶으면 그냥 버스를 탄다. 이거 과연 될까 싶으면 도움 받을 방법을 찾아본다. 몸이 좀 아프거나 기분이 우울하다 싶으면 별 일이 없어도 외출해서 바깥을 쏘다니다 오거나 병원에 간다. 그가 있을 때의 나는 미련하다 싶을 만큼 이러지 않아서, 그에게서 너는 도대체 인간이 왜 그렇게 미련하냐는 타박 아닌 타박을 꽤나 자주 들었던 것 같은데, 그가 떠나간 지 2년 만에 나는 과거의 내가 보면 비웃을 정도로 엄살쟁이가 되고 말았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내게는 나 대신 나를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말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 미련스레 마트까지 걸어갔다 오느라 더위를 먹어도, 마트에서 산 이런저런 물건들을 주렁주렁 들고 오느라 팔이 아파도 이제 내게는 왜 미련을 떠느냐고, 그냥 버스를 타지 하고 타박을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니 니 스스로 엄살을 부릴 수밖에.
오늘 산 물건들은 돈에 비해 제법 무게가 나가는 것들이어서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내내 미련 부리지 않고 얌전히 버스 타고 갔다가 버스 타고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세상에 죽어도 내 편인 건 나 하나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