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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한 보름 있으면 추석인 모양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울러 또 올해도 추석이라고, 하다 못해 냉동 송편이라도 한 봉지 사다가 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시는 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와서 약간의 통화를 했다. 아주 범상한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다가 지인분이 문득 물어보셨다. 저번의 그 오뎅 먹을 만했냐고. 이번에도 좀 살 건데 좀 보내 줄까 하고. 여기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인 분께서 보내주신 오뎅 중에 절반 정도는 아직도 냉동실에서 곱게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뇨 그거 아직 다 못 먹었어요 라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가늘게 떨렸다. 아니 근데 아무래도 여름이니까 오뎅국 같은 거 끓여놓고 먹을래도 쉴까 봐 걱정도 되고 해서 많이 못 먹었다고, 이제 날 선선해지만 금방 먹을 거라고. 그러나 그 변명은 내가 듣기에도 그야말로 변명조여서 말하는 나부터가 맥이 빠졌다. 그걸 아직도 다 못 먹었냐고, 그래 그럼 찬바람 나면 한 번 보내주든지 하겠다고 지인 분은 선선하게 말씀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지만 나 혼자 괜히 커다란 실례를 해 버린 것 같은 생각에 혼자 저녁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전화를 끊고 지인 분에게서 오뎅을 받은 게 언제쯤인지 부랴부랴 브런치를 뒤졌다. 1월 말쯤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 그게 언제야. 벌써 일곱 달도 전이다. 그 일곱 달 동안 그 알량한 오뎅 한 박스를 다 먹지 못하고 있다니, 이래서야 기껏 마음 써서 사서 보내주신 분이 마음이 상한대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에 나는 한동안 의기소침해졌다. 그러게 그냥 무조건 감사하다고 받아서 냉동실에 재놨어야 했는데. 아니 그렇지만 그거야말로 실례 아니냐고.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걸로 그러면 되느냐고. 차라리 지금 남은 것들 깔끔하게 다 먹고 그때 또 주시면 감사하게 받는 게 낫지. 어느 쪽이 옳은지 그른지도 명확하지 않은 두 가지 생각이 번갈아 내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다른 거 안 먹고 오뎅만 가지고 국 한 번 볶음 한 번 떡볶이 한 번 하는 식으로 먹어치웠으면 아마 지금까지 오뎅이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오뎅을 그리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지인께서 보내주신 이 오뎅은 그나마 수제 오뎅이라 시판하는 일반 오뎅에 비해 훨씬 맛있는데도 절반 정도밖에는 먹어치우지 못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나 내게도 할 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 먹기에 오뎅 1.5킬로는 너무 많다. 그리고 더운 여름 철에는 오뎅국 같은 걸 끓여두고 몇 끼씩 먹는 것이 살짝 부담된다는 말도 거짓말은 아니다. 그래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사실이라, 이러다가 아무래도 이번 추석엔 송편 대신 기름에 지진 오뎅이나 먹으면서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공짜로 생긴 오뎅 한 박스 먹어치우는 것부터 이렇게 힘들다니. 혼자 남는다는 건 대개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