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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경을 백 번 읽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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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를 떠나보내고 혼자 허우적대던 시절에 주변 사람들에게서 많은 권유를 받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반려동물을 키워보라는 거였고 두 번째로는 종교를 가져보라는 권유였다. 두 가지 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어 완곡하게 사양하긴 했다.


나의 종교 히스토리는 좀 특이하다. 적지 않은 집들이 그러하듯 우리 집안 역시 독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불교를 믿었고, 그 와중에 중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꽤나 열심히 절에 다녀서 친구를 따라 한동안 절에 다녔다. 한두 해는 초파일을 맞아 절에 달 연등을 만드는 불사도 했다. 그래놓고 고등학교 때는 기독교를 3년 내내 아주 열심히 믿었다. 다니던 학교가 미션 스쿨이었고 교목 선생님이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으신 분이어서 종교부장을 맡게 된 이유가 컸다. 그래서 여름방학마다 종교부에서 하는 수련회를 다녔고, 수련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통성 기도 시간에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 기도를 올려본 적도 있다. 그래놓고 성인이 되고부터는 한동안 성당에 다녔다. 교리 공부도 꽤나 열심히 해서 세례를 받기 직전까지는 갔었다. 그러나 이렇게 삼대 종교에 골고루 발을 담가본 지금의 나는 무교 상태다. 그렇다 보니 주변의 종교를 가져보라는 권유에 딱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어떤 건지 어설프게 맛을 봐서 알고 있으니까.


외출할 일이 있어 몇 군데를 돌아다니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우편함에 뭔가 두툼한 소포가 꽂혀 있었다. 불교를 믿으시는 지인이 보내신 지장경이었다. 지장보살은 부처가 되고도 남을 공덕을 쌓았으면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있다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이 어지러운 세상에 남아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라고 한다. 지장경 한 번 읽어볼 마음이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요즘 글자를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별생각 없이 주시면 보겠다고 대답을 했는데 그걸 보내신 모양이었다.


막상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집으로 날아온 지장경의 두툼한 두께를 보니 이걸 언제 백 번을 읽어서 지은 모든 업을 소멸시키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것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때마침 며칠 사이 날이 급작스레 선선해졌으니 하루에 일독까지는 무리더라도 시간을 내 조금씩이라도 읽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이 한 명이라도 남아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했다던 지장보살님은 어쩌면 성불을 포기하신 게 아닐까 하는 못된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이 모질고 힘든 세상에 남아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지장경을 100번쯤 읽으면 그 사람도 지금 있는 곳보다 더 편하고 행복한 곳으로 '한 칸 더' 옮겨갈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소원이라는 건 언제나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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